1968년 설립 세계반도체 주도 인텔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서 퇴출
신기술·혁신 간과 변화 대응 못해
AI기술·트럼프 등 글로벌 예측불허
국난엔 위정자 ‘밥값’… 기대 난망

실리콘 밸리 개척자, 반도체 제왕, CPU 선구자, 칩 제조 거인, 무어의 법칙. 수식어만으로 상대 기를 꺾는 기업. 대체 누굴까? ‘Intel Inside’. 현재도 극찬받는 이 카피의 주인공이다. 제품에 자사 반도체가 들어있다는 자긍심의 표출이다. 파란색 로고는 기술과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렇다, ‘인텔(Intel)’이다.
1968년 설립돼 실리콘 밸리의 반도체 산업 발전을 이끈 핵심 기업의 하나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며 시장점유율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해 반도체 제왕으로 세상을 호령했다.
특히 중앙처리장치(CPU)의 개발과 상용화에서 선두를 달린 선구자로 30년 간 부동의 챔피언이었다. 1990년대 세계 컴퓨터 CPU 시장의 90%를 차지할 만큼 영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또 반도체 칩 설계와 제조분야에서 오랜 전통과 기술력을 보유한 덕분에 칩 제조 거인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인텔의 창업자 고든 무어가 1965년에 발표한 무어의 법칙(Moore’s Law). 반도체 성능은 24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이 법칙은 업계표준이 됐다.
그랬던 천하의 인텔이 휘청댄다. 지난해 3분기 역대 최대 손실로 주가는 반토막났고, 1만5천명 해고에 주요 사업부문 매각, CEO의 전격 사임이 잇따랐다. 또 1999년 편입된 뒤 무려 25년 동안 머물렀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에서도 퇴출돼 충격을 더했다.
인텔의 자리를 꿰찬 건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넘어선 ‘엔비디아’. 미국 반도체 산업의 대표 주자가 바뀌었다. 가히 산업계의 ‘체제 변화’(regime change)다. 지금 엔비디아는 맞춤형 AI 반도체 생산을 내세운 ‘브로드컴’의 거센 추격과 중국 생성형 AI ‘딥시크’ 충격에 출렁인다. 특히 고성능 저비용 구조에 소스 코드까지 공개한 딥시크는 AI 중국몽(夢)을 잘 보여준다. 상궤(常軌)는 없고, 변혁·파격만 있다. 이런데도 대한민국은 ‘반도체특별법’ 하나 제정 못하고 있다.
기업은 왜 쇠락할까? 이를 분석한 대표적 이론 두 가지. 하나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파괴적 혁신 이론’이다. 성공에 안주해 기존 주력 시장과 고객층에 집중하다 신기술·혁신을 간과해 경쟁에서 뒤처진다. 사례로 디지털 카메라의 잠재력을 등한시하며 필름 사업에 집착하다 몰락한 ‘코닥’과 피처폰에 묶여 스마트폰 등장에 제대로 대응치 못한 ‘노키아’가 있다.
또 하나는 리처드 루멜트의 ‘전략 실패 이론’이다. 기업은 전략 수립에 실패하거나 기존 전략을 고집하다 환경 변화에 적응치 못해 실패한다.
특히 변화(기술·경쟁·규제 등)에 재빨리 대응치 못해 지속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스트리밍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얕보다 기존 DVD 대여 모델에 집착한 ‘블록버스터’와 검색과 디지털 광고시장에서 구글에게 밀려난 ‘야후’가 대표적이다.
이해불가! 인텔은 두 이론을 그대로 답습했다. 2000년대 들어 PC에서 모바일·AI 시대로, CPU에서 GPU(그래픽처리장치)로 넘어가는 시대 흐름을 놓쳤고, AI 칩 생산에서도 뒤졌다. 주력인 CPU에선 경쟁사인 AMD에, 파운드리에선 TSMC와 삼성전자 등에 밀렸다. 이는 기술·산업변화에 선제적 대응 부재, R&D 소홀, 전략(경영) 실패 등이 맞물린 결과다. 닫힌 시스템은 퇴화한다. 또 지금의 부진이 끝이라고 누구도 장담 못한다.
시계 제로의 난세다. 만물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생멸을 거듭한다. 위세도 어느 순간 사그라져 영원한 선두는 없다. 결국 기업은 성장·성숙기를 얼마나 장기간 이어갈지가 관건이다. 일상을 파고드는 AI 기술과 미국 트럼프의 등장으로 글로벌 환경은 예측 불허다. 변화 속도·방향은 우리의 상상 너머다. 불현듯 ‘한국경제는?’, ‘삼성전자는?’. 주력 기업과 산업 경쟁력이 흔들린다. 국내 AI 연구자는 절대수도 적은데 그마저 이탈하는 인재 순유출국이다. 최상위 인재의 꿈은 장사치(개원)다. 국난엔 위정자가 ‘밥값’을 해야 하는데 기대 난망. 와중에 주 52시간제는 역린이 됐다. ‘국가는 왜 몰락할까’하는 물음을 던져볼 때다.
/김광희 협성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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