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예로운 건축상의 시상식장서
주인공 수상소감 건축가 삶 웅변
팬데믹 잘 버텨냈던 한국 건축계
최악의 경기침체로 위기감 커져
이땅의 건축가들에 공명될수 있길


주말 아침, 집 근처 영화관에서 최근 개봉한 ‘브루탈리스트’(감독·브래디 코베)를 보았다. 건축을 소재로 한 극영화이며 15분의 인터미션 포함 215분 분량의 러닝타임이 말해주는 대작이다. 블록버스터류의 흥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마니아층을 파고들며 순항 중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각국은 정상 사회로의 빠른 회복을 위한 도시 재건에 임하여 단순 기하학과 노출콘크리트의 거친 마감으로 기능과 효율성에 착목한 건축술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다. 1950~80년대까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이 시기의 건축 경향을 브루탈리즘(Brutalism)으로 구분하는데 영화 ‘브루탈리스트’의 배경이다.
영화는 나치에 의해 반동으로 내몰리며 설 자리를 잃은 바우하우스 출신 헝가리계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드리언 브로디 분)가 미국에 도착한 뒤 아메리칸드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삶의 여정과 그가 평생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던 건축의 이념을 표상한다.
영화 초반, 갓 미국에 상륙한 라즐로는 자신의 육체적 욕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창가에 들렀다 나오는데 문 앞을 지키고 선 여자가 말한다. 남자도 있다고. 라즐로는 관심 없다고 돌아서지만 감독이 깔아놓은 복선은 영화 후미에서 그의 후원자를 자처해 온 건축주 남자에게 강간 당하는 건축가의 처절한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감독은 건축가를 자본의 시녀(侍女), 밀매음하는 사창(私娼), 기생충이라 도장 찍으며 오늘날 다수의 건축가가 처한 현주소를 우회적으로 성찰한다. 영화를 본 건축인들은 이 지점에서 심한 굴욕감으로 분개하며 영화의 정체를 의심한 채 혼미스럽다고 반응한다.
70여 년 전, 한국전쟁 통에 동류의 극영화 ‘마천루(원작: The Fountainhead)’가 극장 개봉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하워드 록(게리 쿠퍼 분) 또한 건축가이며 ‘브루탈리스트’의 주인공 라즐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건축 이념을 지켜내기 위해 자본권력에 맞서 분전한다. 전자가 건축가를 둘러싼 이전투구와 시기 모함을 극복해 가는 해피엔딩의 과정을 담고 있다면 후자는 건축가를 자본 구축의 간음(姦淫)적 도구로 삼는 권력에 맞서 마침내 영광스런 자리에 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면에서 동질적이다.
영화의 끝부분, 영예로운 건축상의 시상식장. 라즐로는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조카 조피아가 읽어내리는 수상소감에서 건축가는 ‘삶이 아무리 유린당해도 중요한 건 여정이 아니라 목적지이다’는 걸 존재함으로써 웅변한다. 건축주(자본)의 횡포로부터 살아남아 자신의 건축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역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중에도 잘 버텨냈던 한국의 건축계가 근년에 겪고 있는 최악의 경기침체로 인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당장 힘들어도 옳다고 믿고 펼쳐온 건축함의 의지를 꺾지 말라는 영화의 메시지가 오늘 이 땅의 건축가들에게 공명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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