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할퀴고 간 인천 심곡동 빌라

혼자 집 지키다 얼굴 2도 화상

전기·가스비 제때 못 내는데도

소득 기준 이탈, 복지 대상 아냐

서구청·市교육청 지원 대책 분주

27일 오전 인천시 서구 심곡동의 한 빌라가 전날 발생한 화재로 검게 그을린 채 폴리스 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2025.2.27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7일 오전 인천시 서구 심곡동의 한 빌라가 전날 발생한 화재로 검게 그을린 채 폴리스 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2025.2.27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인천 한 빌라에서 불이 나 집에 혼자 있던 초등학생이 중태에 빠졌다. 아이의 가족은 아버지 투병 등으로 생계가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오전 찾은 인천 서구 심곡동 빌라는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가득했다. 빌라 계단에선 탄 냄새가 진동했고, 건물 외벽은 심하게 그을렸다. 전날 오전 10시43분께 이 빌라 4층에서 불이 나 집에 있던 A(12)양이 얼굴에 2도 화상을 입는 등 크게 다쳤다.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긴급 조치를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아이는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양 가족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기와 가스요금이 밀리는 등 형편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집 앞에는 지난해 9~11월분 가스요금이 체납됐다는 것을 알리는 고지서가 붙어 있었다. 이 고지서에는 ‘2차 독촉을 하였음에도 기한 내 납부되지 않아 12월11일 이후 도시가스 공급이 중단됨을 알려드린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편함에는 지난해 6월 이전부터 배송된 것으로 보이는 수십여장의 우편물이 쌓여 있었다. 그중에는 전기요금 미납으로 2024년 12월17일부터 전기 공급이 제한될 예정임을 알리는 안내문도 있었다.

27일 오전 인천시 서구 심곡동의 한 빌라가 전날 발생한 화재로 검게 그을린 채 폴리스 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2025.2.27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7일 오전 인천시 서구 심곡동의 한 빌라가 전날 발생한 화재로 검게 그을린 채 폴리스 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2025.2.27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 빌라에 산다는 한 주민은 “아빠가 신장 투석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이가 자주 집에 혼자 있었는데, 5학년으로는 안 보일 정도로 작았다”고 했다.

행정복지센터 측은 지난해 이 집의 전기·가스요금이 지속적으로 미납되자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A양 부모와 상담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이나 차상위계층은 아니라서 이렇다 할 도움을 받지 못했다.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당시에는 생계급여 기준 소득에서 벗어나 지원을 해줄 수 없어 소득에 변동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안내했다”며 “A양 어머니가 식당에 다니면서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방학 중인 A양은 화재 당시 집을 홀로 지키고 있었다. 개학을 고작 며칠 앞두고 부모가 외출한 사이에 안타까운 참변이 발생한 것이다. 소방당국은 우선 화재 원인 조사에 집중하고 있다. 현장에서 발견된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이 화재 원인 조사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와 함께 왜 A양이 홀로 집에 있었는지 등도 조사 중이다.

화재가 발생한 집의 우체통에는 체납고지서들이 쌓여있다. 2025.2.27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화재가 발생한 집의 우체통에는 체납고지서들이 쌓여있다. 2025.2.27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날 행정복지센터에서 만난 A양 어머니는 “아이가 그래도 조금씩 호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오늘 다시 의사와 상담하러 병원에 찾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서구청과 인천시교육청은 지원 방안을 찾고 있다. A양 부모는 화재 직후 구청에 ‘긴급복지지원’을 요청했다. 긴급복지지원은 화재, 가족의 사망, 가정폭력, 질병 등 위기 상황에 놓여 생계 유지가 곤란한 저소득 가구에 생계·의료·주거 비용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서구청 관계자는 “A양 가족은 160만원 정도의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추가적인 지원책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민철·송윤지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