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전국 수학여행’, 인천 상영 가보니
어른의 세계 발들인 직업계고 학생들
어떻게 살아갈까… 담담하게 그려내
GV 행사 성료, 주역 배우들 깜짝 방문

인천을 배경으로 하는 청춘들의 영화가 나왔습니다. 혹자는 정재은 감독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 이후 아주 오랜만이라고도 합니다.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란희 감독의 장편 독립 영화 ‘3학년 2학기’입니다.
지난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올해의 배우상,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 KBS독립영화상, 송원 시민평론가상)을 차지했고,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독립스타상, 열혈스태프상, CGK촬영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올해 ‘2학기’(하반기) 정식 개봉을 앞두고, 지역을 순회하는 공동체 상영회 ‘전국 수학여행’에 나섰습니다.
지난 26일 오후 7시 인천 독립·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영공주)에서 첫 번째 전국 수학여행이 열렸습니다. ‘3학년 2학기’의 주요 배경인 인천에서 수학여행이 시작돼 그 의미를 더했습니다. 교육계, 노동계는 물론 수많은 시민이 영공주에서 함께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인천 직업계 고교생들의 ‘3학년 2학기’

인천의 한 직업계고 3학년 학생 창우(유이하)와 친구 우재(양지운)가 남동공단에 있는 공장으로 실습을 나가게 됩니다. 취업이 연계된 2학기 현장실습입니다. “중견이에요?”라고 묻는 우재에게 “중소야”라고 답하는 선생님의 대화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던 것처럼 무척이나 익숙해 보입니다.
그렇게 교복을 벗고 작업복을 갈아 입은 창우와 우재. 우재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실습을 포기하는데, 창우는 끈기 있게 작업을 이어 가는 모습입니다. 영화는 창우의 집안 사정도 함께 보여줍니다. 창우는 실습과 연계된 취업, 또 취업과 연계된 대학(공업전문대) 진학, 그리고 산업체 병역특례도 목표로 두고 싶어 합니다.
공장에는 다른 학교에서 먼저 온 실습생 ‘에이스’ 성민(김성국)과 회계부서의 다혜(김소완)도 있습니다. 창우는 이들과 친해지면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도 합니다. 일터는 창우의 안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위험 요소가 곳곳에 있고요. 일련의 사건을 겪기도 합니다. 일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이야기는 담담하게 흐릅니다. 학생들의 표정이 마냥 어둡진 않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청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특별한 ‘빌런’(악역)이 있는 영화도 아닙니다. 공장 선배, 선생님, 회사 대표이사, 교육청 노무사 같은 어른들은 자신이 속한 ‘시스템’ 안에서 나름 적절히 대처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바꾸기 보다는 적응하는 쪽을 택한 듯 보입니다.
창우을 비롯한 학생들은 ‘이 길이 아니면 길이 없다’는 어른들의 시스템 안에서 ‘정해진 선택’을 시종일관 강요당합니다.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그래도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싶어 움직이는 학생들이 대견하기도 합니다. ‘팔토시’와 ‘가죽치마’ 얘깁니다. 영화를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창우가 기타로 서툴지만 차근차근 연주하는 헨델의 ‘울게 하소서’(오페라 ‘리날도’ 中)가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인천 서부산단과 남동산단을 비롯한 인천 곳곳에서 로케이션을 했다고 합니다. 인천 시민들에게 반갑고 익숙한 풍경이 많이 나옵니다. 창우 역을 맡은 유이하 배우의 고민이 묻어나면서도 듬직한 연기가 인상 깊습니다. 앞서 언급했든 유이하 배우는 이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른들의 세계에 비교적 일찍 들어온 직업계고 학생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영화 관람을 마쳤습니다.
수학여행 온 시민들, 어떻게 봤을까

이날 수학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관객과의 대화’(GV)였습니다.
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이 진행한 GV에서는 이란희 감독은 물론 최연선 인천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 김태훈 금속노조 인천지부 한국지엠 비정규직지회 지회장, 한세하 인천독립영화협회 활동가가 참여해 영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픈채팅방을 통해 관객들의 질문과 감상평도 들었습니다.
아, 영화의 주역 유이하, 김소완, 김성국 배우가 수학여행에 ‘깜짝 방문’을 해줬네요. 관객들은 박수로 이들을 맞이했고요. 영화 속 학생들과 겹쳐 보였는지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이란희 감독의 말부터 소개합니다.
“우리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면서 그 가운데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들 인문계 고교 학생이고, 다들 대학입시를 생각할 거라고 봅니다. 직업계 고교 학생들이 뉴스에서 언급되는 건 딱 하나입니다. 현장실습을 하다가 사고가 나서 다치거나 죽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죠. 이 영화에서는 직업계 고교 학생들이 살고 있는 모습에 집중했습니다. 실습하는 과정, 취업하기까지 쭉 다뤄보자. 실습에서 죽거나 다친 학생들의 후배나 친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기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한세하 활동가는 창우가 근로계약서 등에 사인을 할 때 “저는 아직 사인이 없는데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고 합니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안 됐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최연선 부위원장은 “현장실습생의 어려움과 제도적으로 개선할 방법을 고민할 것”이라며 “교사노조 조합원들에게도 널리 알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김태훈 지회장은 “파견업체로 스무살 된 친구들이 많이 들어오고, 우재처럼 2, 3일 만에 그만두는 친구도 있고 묵묵히 참고 일하는 친구도 있다”며 “현장에서 그들을 보는 만큼 영화가 무겁게 다가왔다. 다른 사람들과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현장을 개선시켜 나갈 것인가 이야기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노동계 인사도 객석에서 “영화에서 법 위반하는 것을 체크하면서 봤다”고 할 정도로 적나라한 노동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영화입니다.
‘3학년 2학기’ 전국 수학여행은 이제 시작입니다. 전국 곳곳을 여행하며 더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좋은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인천 영화입니다.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