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다세대주택으로 등록된 신축 빌라가 실상은 다가구주택처럼 운영되며 경매에 넘어갔을 때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문제 등 세입자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2025.2.25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서류상 다세대주택으로 등록된 신축 빌라가 실상은 다가구주택처럼 운영되며 경매에 넘어갔을 때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문제 등 세입자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2025.2.25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최근 경기도 곳곳에서 다세대주택을 둘러싼 전세사기 우려(2월27일자 7면 보도)가 커지는 가운데, 도내 경매 데이터를 전수 분석한 결과 전세사기 위험 건물 5채가 새롭게 드러났다. 해당 건물들은 한 명의 임대인이 여러 세대를 소유한 뒤 등기 직후 공동담보로 묶어 대규모 대출을 받는 등 앞서 피해가 발생했던 곳들과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서류상 다세대, 실상은 ‘다가구’… 공동담보 덫에 갇힌 청년들

서류상 다세대, 실상은 ‘다가구’… 공동담보 덫에 갇힌 청년들

7면 보도) 가운데, 서류상 다세대주택으로 등록된 신축 빌라가 실상은 다가구주택처럼 운영되며 세입자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가 확인됐다. 해당 건물들은 각각 수원시 인계동과 우만동에 위치하며 세 건물 모두 임대인 A씨가 소유하고 있다. 26일 수원
https://www.kyeongin.com/article/1730717

3일 법원경매정보에 올라온 도내 다세대주택 513건을 검토한 결과 보증금 반환이 어려운 조건을 안고 있는 등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건물 5채가 확인됐다. 각각 수원(3곳)·시흥(1곳)·평택(1곳)에서 발견됐으며 한 명의 임대인이 건물 전체를 갖고 있거나 적게는 8세대에서 많게는 30세대를 소유한 형태였다. → 표 참조

해당 건물들은 등기한 뒤 곧바로 건물 내 다른 세대들을 공동담보로 설정한 데 이어, 동시에 10억원 이상의 은행 채권이 우선순위 근저당으로 설정된 점이 특징이었다. 서류상으로는 다세대주택이지만 여러 세대가 공동담보로 묶여 사실상 다가구주택과 유사한 형태였다. 현재 개별 세대가 동시에 경매에 부쳐진 상태다.

수십 채의 다세대주택을 한 사람이 소유했던 이른바 ‘빌라왕’도 이런 구조에서 생겨났다. 임대인은 여러 세대를 공동담보로 설정해 대출을 받았고 개별 세대의 등기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다. 그 결과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보호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임대인이 여러 세대를 공동담보로 묶는 이유는 금융권 대출 한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개별 세대에 대한 대출은 제한적이나 여러 세대를 공동담보로 설정하면 더 큰 규모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건물의 금융 부채가 늘어나게 되지만, 이 점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세입자들은 정보 사각지대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하는 실정이다.

전세사기 피해 주택인 수원시 한 오피스텔에 경매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2024.10.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전세사기 피해 주택인 수원시 한 오피스텔에 경매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2024.10.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특히 일반적인 다세대주택과 달리 한 건물이 공동담보로 묶여 있는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모든 세대가 낙찰되고서야 보증금이 온전히 배분되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최우선변제권이 없는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더욱 커진다.

대표적으로 수원시 T건물과 B건물은 다세대주택으로 등록됐지만 등기부등본상 다른 세대들과 공동담보로 묶여 있다. 이들 건물은 각각 최초 감정가가 44억1천만원, 20억6천만원으로 책정됐으나 1회 유찰되면서 감정가의 70% 수준으로 조정됐다. 입주 세대 규모를 고려하면 유찰이 반복될 경우 보증금 회수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평택시 S건물 역시 등기와 동시에 공동담보가 설정됐으며 3회 유찰을 거치면서 최초 감정가 29억4천만원에서 34%까지 가격이 하락했다. 시흥시 A건물도 등기 이후 16세대가 공동담보로 묶였고 현재 1회 유찰되며 감정가의 70% 수준까지 가격이 내려갔다.

더욱이 최근 전세사기 의혹이 이런 신축 다세대주택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앞서 부동산 시장 활황기에 전세가율이 높아지면서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들 사이에서 다세대주택이 비교적 저렴한 매물로 떠오른 바 있다.

서류상 다세대주택으로 등록된 신축 빌라가 실상은 다가구주택처럼 운영되며 경매에 넘어갔을 때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문제 등 세입자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2025.2.25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서류상 다세대주택으로 등록된 신축 빌라가 실상은 다가구주택처럼 운영되며 경매에 넘어갔을 때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문제 등 세입자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2025.2.25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이를 악용해 임대인과 부동산 중개업자가 세입자들에게 허위 정보를 제공한 정황도 포착됐다. 전세사기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대인 A씨가 소유한 수원시 인계동 P건물의 경우, 준공 직후 건물 내에 입점한 N부동산 중개원이 보증보험에 가입 가능하다며 계약을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P건물은 채권최고액 등이 현저히 높아 부동산 경기 악화 시 악성 매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중개원은 수원시 내 특정 은행 지점을 언급하며 의뢰인을 안심시켰고, 실제 이를 통해 대출도 이뤄졌다. 현재 해당 부동산은 폐업했으며 세입자들은 N부동산도 함께 고소한 상태다.

이희우 법률사무소 중경 대표 변호사는 “공동담보 설정으로 사실상 다가구주택과 차이가 없어지고, 근저당 비율이 높아 낙찰가가 낮아질수록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다”며 “사회초년생 등 전세 수요층이 정보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이런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공동담보로 묶인 다세대주택이 보증금 보호에 취약한 만큼, 안전한 전세 계약을 위해 임대인이 보증금 일부를 예치하게 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동담보가 설정된 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라며 “전세사기 피해를 방지하려면 임대인이 보증금 일부를 은행 등에 예치하도록 하는 ‘에스크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보증금을 일정 부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유사한 전세사기 피해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