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 제공하는 종교의 위로

회복탄력성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극단적 신념, 맹신·비합리성 야기

현실균형 상실 사회적 해악 초래

세속 욕망 대신 본질가치 추구를

김기연 前 평택교육지원청 교육장·학부모교육 전문강사
김기연 前 평택교육지원청 교육장·학부모교육 전문강사

17세기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실용적 논증으로 흥미로운 논리를 제시했다. 파스칼의 핵심 주장은 신이 존재한다면 믿는 자는 천국에서 무한한 보상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믿는 자는 작은 비용을 치르는 것 외엔 손해가 없고, 믿지 않는 자는 별다른 보상도 손해도 없다. 따라서 신을 믿는 것이 유리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신을 만든 것도 사람이며, 극락이나 천국은 현실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향일뿐, 실제 존재는 의문이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만년에 루브르박물관 앞에 쓰러져 동상을 끌어안으며 “나를 어떻게 해 달라, 더 강력한 신은 없느냐”고 울부짖었다. “사람은 삶이 무서워서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무서워서 종교를 만들었다.”(스펜서(Spencer, H)

하지만 수백억원짜리 거대한 교회당과 고급 승용차를 타는 성직자들 앞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은 그 화려한 황금 장식과 대리석 속에서 과연 세상의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따라서 ‘파스칼의 도박’이라는 개념은 종교를 신앙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지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종교 신앙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함께 고려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첫째, 종교는 삶의 의미를 제공하며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신앙을 통해 사후 세계를 기대하고 삶의 목적을 부여받음으로써 심리적 안정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둘째, 종교는 윤리적 삶을 촉진하며 선과 악을 구분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규정한다. 자선, 나눔, 인내, 용서 등의 가치는 신앙을 통해 강조되고 종교 공동체는 사회적 유대와 연대감을 형성하여 사회적 안정과 질서를 유지한다.

셋째, 종교는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도나 명상 같은 종교적 실천은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고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높은 회복탄력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종교의 극단적 신념은 첫째, 맹신과 비합리성 문제를 야기한다. 신앙이 삶의 중심이 되면서 비판적 사고가 약화되는 경우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비이성적인 신념 체계를 고수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둘째, 종교적 배타성과 갈등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자신들의 교리를 절대적 진리로 간주하며, 이로 인해 종교 간 또는 종교 내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십자군 전쟁, 종교 개혁기의 갈등, 현대의 종교적 테러와 같은 사례는 종교가 오히려 분열과 폭력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종교가 현실적인 균형을 잃으면 사회적 해악을 초래할 수 있다. 일부 성직자와 종교 지도자들이 신앙의 외피를 두르고 정치적 언행이나 극단적인 사회참여에 이용하면 종교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된다.

넷째, 도덕적 위선과 기복 신앙 문제다. 종교가 기복을 빙자해 과도한 헌금과 시주를 강요한다면 이는 신앙이 아니라 상업이다. 일부 종교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삶으로 신앙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이미 설득력을 잃은 것이다. 초대교회 예수의 제자는 혈연인 야고보가 아니라 베드로가 중심이 되어 교회를 이끌었다는 사실은 능력과 역량에 기인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파스칼의 도박’은 단순히 ‘신을 믿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믿을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믿음은 교리적 선언이 아닌 삶을 통해 증명되어야 한다. 예수는 광야에서 40일 간 금식하며 사명자의 길을 준비했고 석가는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8만4천여 개의 법문을 깨우쳤다.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학파가 말했듯이 ‘행복은 욕망에 반비례’한다. 신앙도 세속의 욕망을 내려놓고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할 때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기연 前 평택교육지원청 교육장·학부모교육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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