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도덕성 인증 징표가 가운
세월따라 이들 권위 큰 위협 받아
매일 TV에 등장하는 헌법재판관
성향따라 다른 판결 승복 어려워
어른 사라진 시대, 소명 고민해야

3월은 입학식의 계절이다. 학위 가운을 입은 교수들이 줄줄이 입장하면서 입학식은 시작한다. 전공에 따라 가운의 장식이 다르다. 신입생은 교수의 모습에서 경외감을 느낀다. 총장은 진리와 정의를 말한다. 재학생들은 후배들을 환영하고, 학부모의 모습도 눈에 띈다. 입학식장의 분위기는 기대와 설렘이 넘치고 긴장감도 있다. 며칠 전 졸업식은 완전히 달랐다. 교수는 동일하지만 입학식과 같은 권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총장은 여전히 진리와 정의를 말하지만 귀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박사 졸업생을 빼면 빈자리가 더 많다. 식장의 분위기는 썰렁하지만 바깥은 분주하고 활기차다. 기념촬영이 한창이다. 그들에게 졸업식은 학사모를 쓴 젊은 날의 인생 샷을 남기는 시공간이었다. 지난 4년간의 교육과정이 입학식과 졸업식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교수로서 자괴감이 생긴다.
대학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법조인, 종교인도 마찬가지다. 중세시대 이래로 권위를 인정받는 직업은 가운을 입었다. 이들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이 탄생했다. 교육, 법, 종교, 의료는 사회 유지의 필수요소다. 그 분야의 종사자는 장기간 전문 교육과 수련 과정을 거친다. 동시에 직업윤리도 함양한다. 모든 전문직은 자율적으로 윤리강령을 만들고 준수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기능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의 전문성과 도덕성을 인증하는 징표가 바로 가운이다. 가운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의 상징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들의 권위는 크게 위협받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고도화가 큰 이유이지만 종사자 스스로가 위기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인터넷의 보급과 인공지능(AI)의 등장은 기존 교육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 교수 보다 뛰어난 전문가가 도처에 있다. 지식인으로서 교수의 위상은 추락했다. 곡학아세(曲學阿世)와 ‘내로남불’의 지식인이 너무도 많다. 자녀의 입시를 위해 문서 위조를 서슴지 않은 교수 부부도 있었다. 이들은 유죄판결이 확정되었음에도 별로 반성하지 않는듯하다. 이에 더하여 대학교육이 대중화되고 학력수준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교수들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종교인의 권위도 땅에 떨어졌다. 일부 종교인의 일탈은 종교가 등장할 때부터 생겨난 문제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범죄를 조직한 사람이 ‘목사’를 참칭(僭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삶은 여전히 유한하고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교계 원로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통합에 앞장서야 할 종교인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 종교지도자가 정치집회를 주도하고, 그 자리에 현역 정치인이 찬조연설을 한다. 제정일치(祭政一致)사회로 회귀하는가. 종교인은 지극히 세속화되었다.
탄핵 정국에서 법조인이 주목받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국민들은 법원과 판사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주색 가운을 입은 근엄한 모습의 헌법재판관이 매일 TV, 인터넷 영상에 등장한다. 그들은 사법 권위의 상징이다. 정치관여가 높아지면서 국민들은 헌법재판관의 면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추천권자는 물론 출신지, 학력, 과거 활동이력 등이 공개되어 있다. 그 결과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재판관 각자의 정치적 성향을 공정으로 포장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법관의 성향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면 결과에 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가운을 입는 직업인들은 언제나 자신의 소명(召命)을 고민해야 한다. 가운은 장식에 불과하지만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운이 허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통합되고 유지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두가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이념, 지역, 성, 세대 등으로 분열되어있다. 모두 다 귀담아들을 수 있는 말씀을 하는 어른이 우리사회에 존재하는가. 어른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라진 어른의 자리를 AI가 대신할 것인가. 매일매일이 혼란스럽다. 앞날은 불투명하다. 무릇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과 사명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란다.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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