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산 아내 마주한 싱글대디 에티엔의 일상 균열로 시작

미술작품 연쇄적 등장 느낌… 본질에 대한 위트·반전 담겨

17년간 잊고 지냈던 아내 발레리의 존재를 마주한 순간 싱글대디 에티엔의 평온했던 삶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에티엔은 하나뿐인 딸 로자를 홀로 키우며 아내의 존재를 애써 부정해왔다. 아내의 부재가 티 없이 맑은 로자에게 흠이 될까 조심스러웠던 탓일까. “아빠, 엄마를 지금도 사랑해?”라고 로자가 묻자 돌아온 답은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순 없어. 포기하면 그 사랑은 사라지거든”이었다. 감정을 꾹꾹 눌러 삼킨 듯한 에티엔의 모습에서 아내가 갑작스레 집을 나간 뒤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이토록 에티엔과 로자는 서로에게 전부였다. 그러나 발레리를 조우한 순간 에티엔의 시간은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애정이 차갑게 식은 줄로만 알았는데, 뜻밖에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된 것이다. 에티엔의 시선은 여전히 발레리를 쫓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 요동친다. 에티엔의 복잡미묘한 감정선은 서사 전반에 깔린 리듬감으로 극대화된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엣나잇필름 제공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엣나잇필름 제공

때로 피사체가 선보인 역동적인 움직임과 그를 비춘 빛의 각도 등 섬세하게 구현한 여러 디테일도 관람객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 영화 속 장면들은 마치 여러편의 미술 작품이 연쇄적으로 등장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금 생각게 하는 이 영화에는 에르완 르 뒥 감독 특유의 위트가 담겼다. 희미해진 설렘과 예정된 이별이란 비극적인 스토리인 신파 멜로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했지만 극 후반부 에티엔과 로자가 발레리를 만나며 또한번 반전을 예고한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엣나잇필름 제공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엣나잇필름 제공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영화계 샛별을 발굴하는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기자 출신인 늦깎이 감독은 데뷔작 ‘더 베어 네세시티’에 이어 최근 두번째로 칸영화제의 부름을 받았다.

전세계 영화인의 시선을 끈 이 작품은 지난달 26일부터 극장가에서 국내 팬들을 만나고 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