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도에 적응하자고 달래보다
이런 편리함을 원했었나… 숨가빠
노동서 해방되면 행복할까 고민도
힘듦·불편함은 매순간 사랑하는 것
자동화에 내어준 진짜 삶 되찾을 때


도서관 화장실에 갔다가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바람에 당황했다. 손가락 까닥 안하고 묵직한 문을 통과하는데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편리해서 좋은 게 아니라 그 반대였다. 화장실 문 정도는 내 손으로 충분히 열 수 있는데 싶었다. 내가 경험해야 할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긴 기분도 들었다.
한 시절에서 다른 시절로 건너갈 때 우리는 ‘문을 연다’고 말한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기, 그리고 중년과 노년을 시작할 때, 우리는 한 시절의 문을 닫고 다른 시절을 연다. 떠나온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새로운 시절이 시작된다는 기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다양한 감정의 색깔과 온도를 경험한다. 내 사춘기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붉은 빛이었고, 삼십대는 온통 새파랬다. 마흔 중반을 지나는 지금은 예상 외로 빛나는 흰색이다. 경계선을 넘어설 때마다 때론 아팠고 즐거울 때도 있었으며 가끔은 속시원했다. 어쩌면 삶은 대개 밋밋하고 자각이 없이 지속되며, 변화의 순간만이 유독 또렷하게 각인되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문을 여는 건 꽤 중요한 사건이다. 눈앞에 놓인 묵직한 것을 밀어내기 위해 힘을 쓰는 일, 틈새 사이로 점차 넓어지는 다른 공간과의 첫인사. 우리는 천천히 열 수도 있고 불쑥 열어젖힐 수도 있다. 무덤덤하게 지나치기도 하며, 열다가 다시 닫고 호흡을 고르는 방법도 있다.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순간은 소중하다. 깨어나 감각하게 하고 사유하고 사랑하게 하므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순간 세상이 바뀌어 있다. 다양한 감정과 색깔은 삭제된 채, 오직 편리함과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A.I. 세상에 놓여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서 급하게 떠밀려 움직이느라 숨가쁘다. ‘이렇게 편리하고 빠른 세상을 원한 적이 없는데…’라고 얼버무릴 겨를도 없다.
세상의 속도에 적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래보다가, 자동으로 열리는 화장실문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우리의 일상은 이미 충분히 자동화되어있다. 계단을 오르는 대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고, 식당에서는 키오스크로 주문한다. 승용차나 비행기를 타는 일은 너무 당연해서 자동화라고 느끼지도 못한다. 며칠 전에는 로봇이 음식물을 식별해 냉장고 칸에 정리해 넣는 동영상을 보았다. 집안일을 대신해주는 로봇의 출시가 멀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로봇이 대신해서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된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할까?
나는 힘이 드는 일을 좋아한다. 힘이 드는 일은 힘든 만큼 커다란 기쁨을 준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될 때까지 상상하면서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는 일이 좋고, 아침저녁으로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일이 좋고, 한번 씻은 물을 양동이에 받아두었다가 재활용수로 변기물을 내리는 일이 좋다. 어제는 직접 도배풀을 쑤어 벽지를 발랐다. 가위질은 서툴고 벽은 쭈글쭈글했지만 내 손으로 도배지를 붙이자 무심코 대하던 벽에 애정이 생겼다. 이제 벽은 그냥 벽이 아니었다. 천장에 벽지를 붙이다가 의자에서 넘어진 일, 밀가루풀이 묻은 끈적한 도배지에 얼굴이 붙었던 일 같은 추억들이 떠오르는 소중한 나만의 벽이 되었다. 힘든 일들은 그냥 힘들게 두어야 한다. 불편한 일들은 그저 불편하게 경험하는 것이 좋다. 매순간 힘들고 불편하게 산다는 건 매순간 사랑하며 산다는 뜻이다.
로봇이 인간의 일들을 대체하면서 인간은 진짜 삶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인간은 오직 편리함과 불편함이라는 두 가지 감정만을 누리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존재로 하락했다. 나는 인간의 소중한 경험과 감정을 훔쳐가게 될 A.I. 세상에 반대한다. 좀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직접 문을 열고, 내 손으로 냉장고에 음식을 넣고 싶다. 일상의 작고 소소한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다양한 감정의 색깔을 누리며,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기쁨과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싶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편리함에 중독되어 있다. 지금은 A.I.를 개발하기보다, 자동화와 편리함에게 내어준 우리들의 진짜 삶을 되찾아와야 할 때다. 자동으로 여닫히는 화장실 자동문에게 정중한 거절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죄송합니다만, 화장실문 정도는 제 손으로 직접 열고 싶습니다. 저는 문을 여는 순간의 설렘을 꽤나 즐기는 편이라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