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과서 ‘자율 선택제’ 변경

道교육청 43.7% 채택, 평균 넘지만

지역간 개별화교육 ‘역차별’ 등

현장 혼란… 정치권 합의 부재 원인

시행착오 되짚고 정책 안정 돼야

서예식 한국창의영재교육원 부원장·前 매탄고등학교장
서예식 한국창의영재교육원 부원장·前 매탄고등학교장

올해는 디지털 교과서 도입의 원년이라 불리지만, 학교 현장은 혼란 그 자체이다.

교육부가 서책형과 AI 디지털 교과서를 의무화하려 했으나 야당에서 시행을 석달 앞두고 이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고 지난 1월21일 대통령 권한 대행은 재의요구를 행사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교과서는 ‘자율 선택제’로 바뀌었고 경기도교육청에서는 43.7% 학교가 디지털 교과서를 채택했다. 이는 전국 평균 32.4%보다 상회한다. 최상위와 최하위는 100%에서 8% 채택률 차이를 보인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점은 지역간 학력격차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각 시·도교육청의 선택, 즉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어느 지역인지와 학교에서의 선택 여하에 따라 ‘맞춤형 개별화교육’의 역차별과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교육 현장의 혼란은 결국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며 이는 근본적으로 교육 민생, 즉 정치권에서의 미래 한국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합의가 부재한 데서 비롯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교육의 디지털 대응 역량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임진왜란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피난길에 오른 선조의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위기의 순간에 준비되지 않은 공교육 시스템은 전국 방방곡곡 모든 학교급에서 소중한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가 외국의 서버에 집적되고 교육청은 수십조씩 예산을 쓰면서도 정작 온라인 수업 상황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새로운 플랫폼 구축과 이를 활용한 디지털 전환 기반 구축의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았는가?

정치권은 교육의 미래보다 당장의 표심에 급급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이 흔들려 ‘교육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하다. 정파적 이익에 따라 교육 정책이 좌우되는 동안 세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영국 교육기술전시회(BETT Show)에 참관한 800여 명의 한국 교사들이 목격한 현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미 세계는 AI를 활용한 교육 혁신으로 빠르게 전진하는 만큼 우리도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은 없다.

돌이켜보면 1970년대 산업화 시대를 대비해 충남대학교를 공업교육대학으로 과감히 전환하여 관련 교원을 양성해 공업화 시대를 대비했고 컴퓨터 교육 기반을 구축했다. 당시에도 반대와 우려가 있었지만 그 선견지명 덕분에 불과 반세기만에 IT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다음에 도입하겠다”는 말은 사실상 “절대 도입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인류 역사상 완벽하게 준비된 혁신은 없었다. 증기기관차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도 똑같은 우려와 반발이 있었다. 그럼에도 변화는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변화의 핵심은 교사들의 인식 전환이다. AIDT 도입의 찬반 논쟁은 표면적 현상일 뿐이다. AI기술은 교사를 대체하기보다 ‘증강 교사(AI-Augmented Teacher)’로 거듭나게 한다. AI가 단순 지식을 대체하는 시대에 교사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정치권에서는 좌우를 불문하고 ‘민생’을 논한다. 그중에서 교육민생은 정치권의 명분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에 관한 문제다. 정부와 각 정파는 최소한의 합의를 통해 교사의 인식과 여건 개선을 촉진할 수 있는 흔들림 없는 교육 정책을 마련하고 AI 시대 교육을 위한 체계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맞춤형 개별화교육’이야말로 교육의 본질 기능이며 이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선택권이 사는 지역과 학교에 따라 차별이 가해져서는 안된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더욱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유발 하라리가 강조했듯 ‘변화야말로 유일한 상수(常數)’인 시대, 우리는 이 교육의 변화 물결에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간 겪은 시행착오를 되짚어 보고 갈등과 불안을 넘어 협력과 혁신으로 맞선다면 대한민국 교육은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디지털 전환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정책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할 시점이다.

/서예식 한국창의영재교육원 부원장·前 매탄고등학교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