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인천미술 올해의 작가’ 결과보고전
연극 무대로 꾸민 전시장, 신작 60점 선봬
종교화 등 영감받은 환영적 이미지 콜라주
야행성 동물원서 삶에 구멍 내는 ‘도끼’들
오는 5월18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서 개최

‘2024 인천미술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지난해 8월부터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창작 활동을 펼친 염지희 작가가 그 결과를 담은 개인전 ‘녹투라마 : 발렌틴의 도끼’를 5월18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장1에서 개최한다.
염지희 작가는 문학과 철학, 개인적 경험과 꿈에서 영감받은 주제를 콜라주 회화로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인천아트플랫폼 스튜디오에 입주해 창작한 신작 가운데 60여 점을 선보였다.
전시의 실마리는 우선 전시명에서 찾을 수 있다. ‘녹투라마’(Nocturama)는 야행성 동물들을 보여주는 동물원이다. 독일 작가 W.G.제발트(1944~2001)의 소설 ‘아우스터리츠’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이 소설 도입부에서 화자는 녹투라마를 관람하며 어둠 속 환영인지 실재인지 모를 동물들의 움직임을 몽환적으로 묘사한다.
제목의 다른 부분을 차지하는 ‘발렌틴의 도끼’는 독일의 배우이자 극작가 칼 발렌틴(1882~1948)이 공연 중 무대를 도끼로 부쉈던 퍼포먼스에서 따왔다. 이태현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는 “작가는 ‘녹투라마’를 사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연극적 삶의 무대로 바라보며, 발렌틴이 그랬던 것처럼 콜라주 작품이 만들어내는 환영적 이미지를 통해 삶의 무대에 구멍을 낸다”고 설명한다.

어두운 전시장은 연극 무대처럼 구성했다. 하나의 조명이 스포트라이트로 설치돼 전시장 구석구석을 천천히 움직이며 작품들을 가리키는 연출은 전시를 더욱 연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전시장을 꾸민 오브제는 염지희의 작품 속에서도 등장하는 종교화(제단화)의 패널, 아치형 계단과 객석 등으로 작품 속 무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번 전시를 위해 조향사가 특별히 만든 향이 전시장에서 퍼져 나간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코스모스를 운영하는 조경재 작가가 공간 디자인과 연출을 맡았다.
별도의 작품명 대신 전시 제목에 번호가 매겨진 작품들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작가는 프라 안젤리코의 15세기 제단화 ‘수태고지’처럼 서로 다른 거대한 서사들이 한 작품 안에서 그려지고 텍스트가 쓰여진 종교화와 연금술 등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콜라주 재료는 1차, 2차 세계대전 전후 흑백사진 아카이브에서 구한다.


이번 연작의 시작 격인 ‘녹투라마 : 발렌틴의 도끼 #1’(2024)에서 특징이 보인다. 제단화처럼 세 폭의 그림에 라이너 쿤체, 울라브 하우게(1908∼1994) 같은 외국 시인들의 시구를 애너그램처럼 새겼다. 지난 6일 전시 오프닝에서 만난 작가는 “우리 삶에 대본이 있을 순 없지만, 만약 하나의 대본이 있다면 그것은 시이지 않을까 상상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하얀색 바탕에서 콜라주 회화 작업을 해온 작가가 이번 연작에선 어두운 배경을 썼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 창작 활동이 또 다른 변곡점을 만들었다고 한다.
“실험하고 도약하는 데는 항상 인천아트플랫폼이 함께였습니다. 2015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문학과 텍스트를 배경으로 한 작품 세계가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당시 개인전에선 그림의 공간을 무대적으로 연출하는 작은 실험을 했는데, 그런 과정들이 모여 이번 전시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2층 전시장에는 ‘아카이브 : 발렌틴의 테이블’로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과 주요 레퍼런스를 전시했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