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집값 지방 무너진 현실 체감
부모님 이사, 고령화·양극화 상징
수도권 집중·지방유출 불균형 심각
세종시 부동산 급락 ‘위기’ 드러내
130개 기초단체 존속 역시도 불투명

지난 주말 부모님 거처를 알아보기 위해 다녀온 고향에서 ‘지방소멸’을 새삼 절감했다. 구순에 접어드는 부모님은 새 봄이면 인근 작은 아파트로 이사한다. 50년 가까이 손때 묻은 주택을 떠나는 서운함 때문인지 두 분은 망설임 끝에 이주를 결정했다. 부동산중개인과 함께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우선 900세대 대단지임에도 풀죽은 배추 잎처럼 시들한 단지 풍경에 눈길이 갔다. 이날 마주친 주민 대부분은 60대 후반으로 고령화 쓰나미에 처한 잿빛 현실을 드러냈다. 다음은 수도권과 지방의 집값 양극화에 놀랐다. 76㎡ 규모 7천500만~8천만원, 92㎡ 규모 1억3천만원대 매매 가격은 ‘현대’라는 브랜드 가치를 무색케 했다. 순간 서울 집 전세 보증금만으로도 몇 채를 살 수 있다는 계산에 이르렀다. 낮은 집값에 안도하기보다는 지방이 무너진 반증으로 다가와 안타까웠다.
‘지방소멸’ 확산 속도가 가파르다. 수도권 인구 집중은 가파르고 지방 인구 유출은 멈출 줄 모른다.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어선지 오래다. 지난해 말 기준 수도권 인구는 2천604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50.8%를 차지했다. 나머지 지방도시 인구는 2천516만명 49.2%에 머물렀다. 수도권은 전체 국토 면적에서 11.8%에 불과함에도 인구와 자본, 기업이 몰리면서 교통과 주거, 환경에서 심각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부동산 가격 급등은 청년세대에게 절망적이다.
지방도시는 텅 빈 쭉정이다. 한때 집값 상승이 두드러졌던 세종시 집값 하락은 상징적이다. 국토교통부 아파트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e편한세상 세종 리버파크(125㎡ 규모)의 최근 거래가격은 6억500만원으로 최고가 대비 57% 급락했다. 세종 중흥S클래스 리버뷰(125㎡ 규모) 또한 7억4천만원으로 43%가 빠졌다. 세종시 집값은 2020년 이후 내리막인데 지난해 하락률은 전국 3위를 기록했다. 행정수도와 국회 이전이라는 호재가 있음에도 이럴진대 여타 도시는 두 말할 나위 없다.
수도권 집중은 지방도시 서열마저 뒤바꿔 놓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역내총생산(GRDP)에 따르면 부산은 지난해 처음으로 인천에게 제 2도시 자리를 내주었다. 2024년 인천의 GRDP는 116조8천630억원으로 부산 114조1천650억원보다 7조원 많았다. 보다 심각한 것은 갈수록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인천은 지역내총생산이 43% 성장할 때 부산은 28.6%에 그쳤다. 수도권 대 비수도권 격차는 되돌릴 수 없는 도저한 흐름이 됐다. 부산은 더 이상 서울에 이은 제2도시가 아니라는 현실 앞에서 지방은 갈 길을 잃었다.
전국 기초단체 가운데 57%에 달하는 130곳은 ‘지방소멸’ 단계에 있다. 이런 가운데 기초단체 5곳 중 1곳은 출생아 ‘100명 이하’로 집계됐다. 수도권 인구 쏠림은 가속하는 반면 신생아마저 줄면서 ‘지방소멸’은 피할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기초단체 가운데 출생아 100명 이하는 52곳이다. 강원 8곳, 충북 5곳, 충남 4곳, 전북 6곳, 전남 8곳, 경북 9곳, 경남 9곳 등이다. 5년 전 절반 수준인 27곳을 감안하면 가파른 속도다. 학령 인구 감소 때문에 폐교 위기에 처한 초등학교와 신입생을 채우지 못한 지방대학도 허다하다.
‘지방소멸’은 세계적 추세다. 일본 또한 도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도시에서 인구 유출 속도는 빠르다. 지난해 도쿄권 전입 인구 가운데 60%는 20~24세로,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혁신을 통해 신입생 충원율 100%를 달성한 국립군산대학교와 인구가 늘어난 안성시는 드문 사례다. 군산대학교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우려를 뒤로한 채 전국 최초 무 전공, 무학과 지원으로 신입생을 채웠다. 이런 성공 사례를 특정한 기초단체와 대학에 맡기는 건 한계가 있다. 정치가 역할 해야 하는데 혼란스럽다. 새 봄에는 부모님과 지방도시에도 웃음꽃이 피어날 날을 기대해보지만 난망이다.
/임병식 중국 탕산해운대학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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