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장의 아이들’은 한국 영화계의 거장 고 김수용 감독이 1967년 개봉한 작품이다. 6·25 전쟁 직후 휴전선 군사격장 인근 마을. 마을 소년들은 사격장에서 탄피를 주워 생계를 돕는다. 아이들이 목숨 걸고 번 돈은 주정뱅이 아버지의 술값이 되고 친구의 병든 어머니 치료비도 된다. 막장에서 탈출하려 서울행을 결심한 아이들은 여비를 마련하려 탄피를 주우러 갔다가 불발탄이 터지는 바람에 죽거나 기억을 잃는다. 김 감독은 이 영화로 청룡상 감독상과 백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병원에 모인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의 비극에 대오각성해 새마을을 만들 것을 다짐하며 끝난다. 하지만 40여 년이 흐른 뒤 경인일보 기자들이 찾아간 경기북부 사격장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탄피에 의존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위협받는 군사시설보호구역’ 2010년 7월 연재)

취재진이 만난 포천 문암리, 연천 고문리 주민들은 포탄과 실탄 탄피를 경운기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사격장을 주민들은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었다. 군 당국이 묵인한 관행 때문이라 했다. 장기간 사격장 피해를 당한 주민들에게 군은 ‘탄피’로 보상했던 셈이다. 사격장에서, 고물상에서 불발탄 폭발로 사망자가 발생해도 탄피경제는 묵묵히 돌아갔다. 영화 ‘사격장의 아이들’은 경인일보 기획에서 탄피생계가 막힐까 봐 걱정하는 노인들로 등장했다.

경인일보 기획 무렵에 사격장 마을들의 탄피경제는 끝물이었다. 탄피로 생계를 잇는 주민보다 사격장 소음과 도비탄 피해에 민감해진 주민들이 훨씬 많아졌다. 수도권 도시들이 경제발전 속도에 맞춰 비약할 때 군사시설보호구역에 묶여 낙후된 지역 현실은 불공정의 표본이었다. 포천 시민들이 사격장 유탄·도비탄 피해에 들고일어나 10년 가까이 시위를 벌인 배경이다.

성주군민들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자 1조수천억원대 지역개발 예산을 약속했던 정부다. 70년 사격장 피해에 절규하는 포천, 연천, 파주의 아주 오래된 피해는 외면했다.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다. 포천 전투기 오폭 사건은 군사격장 지역주민들의 묵은 감정을 정조준해 타격했다. 묵은 감정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 ‘재난지역선포’로 끝날 일이 아니다. 주민 안전과 군사격훈련을 동시에 실현할 인프라 구축과 의미 있는 예산집행이 절실하다. 열 달 가까이 대남방송 소음피해 노이로제에 걸린 강화 주민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