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표현물 소지·반포 등 혐의
조사 받으며 폭행·협박 당연시
“동료 명예회복 위해 재심 온힘”

“조사를 받으면 사흘 동안 잠을 안 재워요. 폭행과 협박은 당연했습니다. 형을 선고받고 참 어려운 시간을 보냈죠….”
35년 전 이른바 ‘인노회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강병권(61)씨가 힘겹게 꺼낸 기억이다.
대법원은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강씨 등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회원 2명에 대한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인노회는 1988년 3월 결성된 노동자 단체다. 1980년대 인천 5·3항쟁 등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섰던 노동자와 학생 등이 주축이 됐다. 그러나 인노회는 결성 1년 만에 조직이 와해됐다. 1989년 1월 치안본부(현 경찰청)가 인노회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회원 18명을 연행, 15명이 구속되면서다.
강씨 등 인노회 회원들은 이적표현물을 소지·반포하는 등 북한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가혹 행위를 당하면서도 “이적단체가 아니다” “반국가단체 활동을 한 적이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실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강씨 등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30여 년이 흐른 2010년 중반부터 당시 판결에 대해 각각 재심을 신청했다. 그 결과 “인노회는 이적단체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판결이 2017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인노회 회원 중 최동씨는 고문 후유증을 겪다 1990년 30세 일기로 숨져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내린 무죄 판결을 끝내 듣지 못했다.
강씨는 “당시에는 민주화와 노동자 인권을 위해 부당한 국가 폭력에 당연히 맞섰어야 했다”면서도 “형을 선고받고 전과자로 낙인찍혀 취업 등 불이익을 많이 받았다. 그 억울함을 푸는 데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인노회 활동과 재심 신청이 세간의 주목을 다시 받은 것은 2022년이다. 윤석열 정부 초대 경찰국장으로 임명된 김순호 당시 치안감이 인노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동료들을 밀고하고 1989년 ‘대공특채’로 경찰이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당시에도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온 후였지만, 김 전 국장은 국회 등에 출석해 “인노회는 (당시엔) 이적단체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경찰국장 임기를 마친 뒤 경찰대학장(치안정감)을 지내고 퇴직했다.
강씨 등은 이 같은 주장에 맞서 국가적 폭력에 희생된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이 꼭 밝혀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노회 회원 중 처음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신정길(69)씨는 “인노회 사건은 당시 경찰, 검찰, 법원이 합작해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라며 “아직 대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지 못한 인노회 회원 등 인천에서 활동했던 여러 노동·민주화운동 단체의 명예 회복을 위해 재심 등을 통한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