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디 똑같이 태어난다지만

살아가며 나뉘게 돼… 이유는 뭘까

그 열쇠는 바로 ‘반성과 후회’ 유무

오늘날 세상은 광인들 날뛰고 있어

내란 반성 없이 선동·악행, 괴롭기만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춥고 시리던 겨울도 끝나면서 산야에는 봄빛이 완연한 3월이다. 이렇게 계절은 훈훈한 봄날이 오는데,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정상을 잃고 미친 사람들이 날뛰는 모습만 보여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미친 사람들이란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않아 어떤 짓을 할지 알 수가 없기에 그들과 함께 사는 세상은 불안과 위험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모두가 검다고 여기는 색깔을 그들만 희다고 여기고, 모두가 그르다고 여기는 일을 그들만 옳다고 여기고, 모두가 잘못된 일이라고 여기는데 그들만 잘한 일이라고 여기고, 모두가 내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애국적 거사라고 여긴다면, 그들은 분명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정신이 돈 사람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광인이란 바로 정신이 돈 사람을 뜻함에 이의가 없다. 성인이란 광인의 반대이면서 ‘통명(通明)’한 사람임을 뜻한다고 했으니 정상적인 사람보다도 더 나은 사람의 호칭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통명한 사람과 미친 사람은 어떻게 해서 나눠지는 것인가. 인간이란 착한 성품과 양심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래서 실학자 정약용은 ‘천연동류(天然同類)’라는 말을 사용하여 애초에 인간에게는 성(聖), 광(狂)의 구별도 없고 지우(智愚)의 구별도 없이 본디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했다. 인간평등론의 근거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성과 광으로 나뉘고 지혜롭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구별되고 있으니 도대체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요즘 ‘서경(書經)’이라는 고전을 읽다가 그 어려운 문제를 풀어낼 열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다방(多方)’편에 나오는 진리가 있다. ‘성인이라도 반성하고 후회하지 않으면 광인이 되어버리고, 광인이라도 반성하고 후회할 줄 안다면 성인이 된다(唯聖 罔念作狂 唯狂 克念作聖)’라고 말하여 옳지 않은 일을 했거나 잘못된 일을 했다면 염(念), 즉 깊은 생각으로 후회하고 반성하여 개과천선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성과 광이 구별된다고 말했다. 공자께서 가장 존경했다는 주공(周公)의 말씀이라고 했으니 여기에 어떤 사족을 붙일 이유도 없다. 성인이라도 후회하고 반성할 줄 모르면 미친 사람이 된다는 의미, 이런 무서운 진리가 있는데 그렇게 잘못하고 그토록 못된 일을 하고도 반성이나 후회하는 일이 없으면 어떻게 인간일 수가 있겠는가.

인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착한 성품과 기본적인 양심을 지녀야 한다. 착한 성품을 지녔기에 악한 행동을 한다면 마음이 편치 못하고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괴롭고 힘들기 마련이다. 본성이 착하기 때문에 악한 행동을 했다면 바로 후회하고 반성하여 착한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 올바르지 못한 일을 했다면 양심에 걸려 후회하고 반성하여 올바른 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살아야만 정상적인 인간이고 올바른 인간이다. 이런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이 바로 비정상적이고 바르지 못한 것이니 미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세상이 광인들이 날뛰는 세상이라고 말한 이유를 대강은 설명될 것이다. 지난해 12월3일 야밤, 뜬금없는 비상계엄을 선언하고 폭력으로 내란을 일으킨 최고 통치자, 전시나 사변의 위급한 사태가 없는 평온한 밤에 계엄을 선언한 것부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그로부터 발생한 내란 행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들을 저질러 온 국민을 얼마나 불안하게 만들었고 온 세계가 놀란 위헌, 위법을 저질렀으면서도 반성이나 후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보여주지 않았으니 이를 어찌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 선진 국가를 야만의 내란국가로 전락시켜 국격이 얼마나 추락되었는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라면서 잘했다고만 주장하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미친 짓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더욱 불행한 일은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더 나쁜 악행을 계속하게 부추기고 있으니 이는 정말로 천인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후회하고 반성하지 않는 미친 사람의 종말을 보고 있는 요즘이 괴로울 뿐이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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