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성장률 2%대 큰 폭 하락
‘사회갈등 심화’ 요인 중 하나 작용
정부 갈등관리능력 OECD 최하위권
선진국 수준 개선땐 0.3%p 상승 기대
‘모두를 위한 경제’ 뜻 모으길 바라

현재 우리는 심각한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살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4년 고소·고발 건수는 약 37만건, 피고소·고발인은 약 57만명에 달한다. 인구 10만명당 1천108명이 고소·고발되고 있으며 이는 형사법 체계가 유사한 일본에 비해 130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특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사회통합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응답자의 92.3%가 진보-보수 갈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심지어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 또는 결혼을 안 한다는 응답이 60%였고 술자리를 함께 않겠다는 응답도 33%에 달했다. 이어 정규직-비정규직 갈등(82.2%), 노사 갈등(79.1%), 빈부 갈등(78.0%) 등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가 28개 주요국의 사회갈등 정도를 비교한 2021년 보고서에서 한국은 사회갈등이 가장 심각한 국가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정부의 효율성 및 규제의 질 등을 고려해 산출한 갈등관리지수는 46.2로 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그리스 등에 이어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이 같은 정부의 저조한 갈등관리능력은 사회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초역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며, 심할 경우 사회불안을 초래해 생산적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컨대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정책이 집단행동에 막히거나 이익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 설계될 수 있고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경제적 손실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관련 오래전 삼성경제연구소는 매년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1인당 GDP(국내총생산)의 27%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암울하게도 1980년대 연평균 9%를 기록했던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대로 큰 폭 하락했으며 2040년 이후 제로 성장까지 예측된다. 저성장 장기화의 원인으로 인구구조 변화, 세계 경제둔화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사회갈등 심화로 인한 생산성 저하도 그 중 하나다. 즉, 우리나라가 사회적 갈등 심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지속·누적되는 ‘갈등의 덫(Conflict Trap)’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특히 1545년 을사사화 이후 임진왜란과 1905년 을사늑약 이후 한일강제병합 등 을사년의 가슴 아픈 역사를 보유한 한국이 지금 이렇게 분열될 때인가 하는 조바심도 든다.
이러한 점에서 2025년 한국 사회의 핵심 과제는 갈등의 덫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정책당국은 누적된 사회갈등을 잘 관리하고 사회통합을 이룬 토대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런던대 장하준 교수의 사회적 대타협도 고민해 볼 시점이다. 경제정책의 관점을 좌도 우도 보수도 진보도 아닌 오로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국민의 삶이 나아질까’, ‘우리 사회의 갈등을 풀고 깊어진 상처를 치유하는 실현가능한 대안은 뭘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와관련 현대경제연구원은 갈등 정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한다면 경제성장률을 0.3%P 상승시킬 수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나아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Cercate di compiere il bene davanti a tutti gli uomini)’라는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의 사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성심당은 이탈리아어로 벽난로를 의미하는 ‘포콜라레(Focolare)’ 운동을 본받아 벽난로처럼 주위를 환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사회활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차이를 차별과 혐오로 증폭시키며 대립·갈등에 몰두하던 우리에게 따스한 이타심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한다.
입춘이 한참 지났는데도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다. 벽난로 인테리어가 유행이라던데 따스함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온기를 유지하려는 작은 발버둥은 아닐지. 아무쪼록 따뜻한 봄날이 오면, 혐오와 대립이 가득한 한국 사회가 사랑과 화해로 조금씩 채워나가며 따뜻한 벽난로처럼 경제활동의 패러다임을 ‘모두를 위한 경제’로 전환하길 소망한다.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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