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눈물 콧물 다 빼면서 보는 드라마가 생겼다. ‘폭싹 속았수다’, 제주 방언으로 수고가 많았다는 말이라 한다. 참, 이 말부터 해야겠다. 나온지 얼마 안된 신작인데다, 완결이 되지 않았기에 아직 보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양해(?)를 바란다. 1950년대에 태어나 지금은 일흔이 넘은, 우리 시대 어른들과 그 자녀세대가 살아온 삶이 배경이다. 아주 보통의, 가장 평범했던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진하게 그려 냈다. 특히 듣기만 했던 부모의 일대기를 보는 기분이라 절로 눈물 콧물이 다 나온다. 드라마지만, 어쩐지 보는 내내 우리네 현대사를 그려낸 진짜 ‘시대극’이지 싶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이 그렇다. 평생 제주에서 뱃일만 하던 아버지가 서울서 대학에 다니는 딸을 만나러 왔다. 아버지는 서울서 볼 일이 있어 겸사겸사라 했다. 돈이 없어 서러운 일을 겪은 딸은 아버지 얼굴을 보고 위로를 받으면서도, 하필이면 이런 날 서울을 온 아버지가 못내 야속하다. 시외버스 터미널에 나란히 앉아 문득 아버지의 버스표를 보니 아버지의 볼 일은 서울이 아니라, 천안이었다. 그순간 대합실 TV에선 ‘민정당 노태우 대통령 후보 1위’라는 뉴스 자막과 함께 환호와 탄식이 섞였고 딸은 펑펑 운다. 에피소드 내내 ‘김영삼, 김대중 후보 단일화 실패’, ‘보통사람 노태우’와 같은 통상의 역사들이 무심하게 흐른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만들고 이끌며 사회를 지탱한 건 없는 살림에도 물심양면 딸아들을 뒷바라지 해온 부모 덕이고, 돈은 없어도 비겁하지 않고 성실하게 공부하고 일한 보통의 아들딸 덕이다. 절묘한 장면 속 딸의 눈물은 그 보통의 역사를 은유한다.
지역을 담당하는 기자로 일해보니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고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부지런한 출퇴근이 이어지며, 시민들이 필요한 일을 찾아 묵묵히 일하는 보통사람들이 우리 동네를, 도시를, 사회를 지키고 있다. 제아무리 못된 정치가 세상을 혼란케 해도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은 흔들리지 않고 역사를 이어갈 것이다. 그리 되리라 믿는다.
/공지영 지역사회부(오산)차장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