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 승복 않으면 다음 대안은 없어
진정 헌법 수호의지 강해 계엄 선포했을까
군 동원한 국회 진입이 정당했나 생각해야
극우 논리가 악령처럼 배회… 결정 다가와

헌법재판소의 피청구인 윤석열에 대한 결정 선고가 늦어지면서 갖은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다. 탄핵의 인용, 기각만 다투다가 급기야 각하를 예상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망과 주장은 자유다. 그러나 헌재의 판단 기준은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느냐 여부와 만약 위헌·불법적이었다면 대통령직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의 쟁점이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 국무회의의 정당한 심의, 포고령 1호의 위헌·위법성, 국회활동방해 의도, 정치인 체포 지시 여부 등 다섯 가지다. 내란죄를 철회한 것을 두고 논란이 많았으나 이는 내란혐의가 형법을 위반했느냐의 여부를 형사재판으로 넘긴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내란죄 철회는 아니다. 다섯 가지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를 확정하여 이 중 하나만이라도 대통령직을 그만둬야 할 정도로 위중하고, 재판관 6명이상이 이에 동의하면 탄핵은 인용된다.
지난 13일 헌재는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4명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각을 선고했다. 지난 7·8일 윤 대통령은 법원의 구속 취소 인용과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에 따라 석방됐다. 이는 탄핵을 반대하는 측에겐 청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대통령 석방을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비상계엄 직후에 탄핵 찬성이 압도적이었다가 찬반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이후 다시 격차가 벌어지다가 최근 좁혀지는 추세다.(중도층은 여전히 찬탄이 반탄보다 압도적이다). 이러한 현상들과 선고 시기의 지연 등이 탄핵 기각·각하 주장이 격화되는 배경이다.
탄핵 선고가 임박하면서 여야의 대치는 더욱 격해지고 거리의 탄핵 찬반 대결 구도는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혼란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만약 기각이나 각하시 어떠한 상황이 전개될까. 상상과 추론의 영역이지만 상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비상계엄 전에 계엄 선포 가능성을 말했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석방될 줄은 또 누가 예상했을까. 지금의 국면은 이미 정상적이고 합리적 전망이 들어설 공간이 없어질 정도로 난국이다.
아무도 난세지신(亂世持身)의 요결(要訣)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논리는 온 데 간 데 없는 것이 권력정치의 본질이다. 불합리와 역설, 역행, 궤변을 다반사로 여긴다. 국민들 역시 자신의 생각에 합당한 주장과 정보만 취득하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다. 진영이 정치를 지배하고, 맹목적 대결이 일상을 지배하는 형국이다.
다시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선고가 바로 코앞이지만 선고 후가 더 걱정이다. 헌재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 만약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으면 그 다음은 아무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복은 무정부상태를 용인하는 것에 다름 없다. 적어도 대통령 탄핵 건에 대해서는 이념과 진영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가장 진영적 이슈에 진영을 초월하라는 주장이 무망하고 공허하지만 국가 이익을 생각하고, 헌법 수호 의지가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공동체의 앞날은 너무나 암울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복귀해서 리더십을 확립해 갈 수 있을지, 과연 윤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진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위헌·불법적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의 직 복귀가 국익에 부합하거나, 헌법 수호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계엄을 선포했다고 생각하면 탄핵은 기각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면 윤 대통령은 직에서 파면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결정족수를 충족하기 전에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사실이었다면, 정치인을 정말로 체포·구금할 생각이었다면 이런 사람을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시키는 게 타당할까. 야당의 ‘줄탄핵’이 과도했다 하더라도 군을 동원하여 헌법과 계엄법에 ‘정당한 비상계엄이라도 국회에 계엄권이 미치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명문을 어긴 게 정당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논거에 진영과 이념이 들어설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극우 논리는 악령처럼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