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운영 임차인, 차임연체 패소

환자 보호 명분삼아 집행관 압박

부담 느끼고 강제집행 일정 미뤄

재량권 많아 전문지식·경험 필수

임명·선발, 일정한 규정 마련해야

정민경 법무법인 명도 대표변호사
정민경 법무법인 명도 대표변호사

‘피고는 원고에게 부동산을 인도하라’라는 내용의 판결을 받았다고 해도 피고(임차인)가 스스로 이사하지 않는 이상 원고(임대인)는 부동산을 돌려받을 수 없다. 이런 경우 집행관에게 부동산을 인도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을 하면 집행관이 채무자(판결문상의 피고)가 점유 중인 부동산을 채권자(판결문상의 원고)에게 인도해준다. 이 절차를 인도 집행, 즉 강제집행이라 한다.

부동산은 동산과 달리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강제집행은 채무자를 강제로 이사시키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채권자가 판결문을 가지고 강제집행을 신청하면, 집행관은 해당 부동산에 방문하여 채무자를 만나 스스로 이사할 수 있는 기간을 부여한다. 일명 ‘계고’라 알려진 부동산인도고지 절차다. 집행관은 채무자에게 1주 내지 2주의 기간 안에 스스로 이사하지 않으면 그 이후에 언제든지 강제집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이 절차는 법률에 규정은 없지만 권고사항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반드시 진행한다.

채권자는 집행관이 부여한 1주 내지 2주의 기간이 지나면 당연히 부동산을 인도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채권자가 부동산을 인도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집행관이 ‘본집행 날짜’를 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집행 날짜는 전적으로 집행관이 지정한다. 문제는 본집행 기한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다툼이 심해 민원이 예상되거나 집행과정에서 저항이 예상되는 등 문제가 있는 사건의 경우 한없이 본집행 일정을 미루기도 한다.

실제로 한 임차인은 병원을 운영하면서 차임연체로 명도소송에서 패소하였음에도 여전히 입원환자를 받으며 병원을 운영하였고, 임대인이 강제집행을 신청하자 환자 보호를 명분 삼아 언론을 무기로 집행관을 압박하였다. 강제집행에 부담을 느낀 집행관은 임대인에게 환자의 대체 입원실 마련과 이송에 필요한 완벽한 준비 등을 요구하며 집행일정을 미뤘고, 당시 퇴직을 몇 개월 앞두고 있던 담당 집행관은 새로 부임하는 집행관에게 사건을 넘기기 위해 본집행 일정을 지정하지 않았다.

집행관이 채권자의 신청에 따라 집행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 채권자는 법원에 집행에 관한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법원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신청서를 송부하고 집행관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등 3개월 이상 걸리기도 한다. 결국 채권자는 집행관이 본집행 일정을 잡아주지 않으면 법원의 결정을 받아 본집행을 진행하기까지 5개월 이상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기간 채권자의 손해는 계속된다.

비단 일정만이 문제는 아니다. 부동산 인도 집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점유자가 누구인지’다. 판결문상 피고인 채무자 외 제3자가 점유하거나 채무자가 제3자와 함께 점유하는 등 집행관이 현장에 방문했을 때 점유자가 다르면 집행을 할 수 없다. 그 점유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집행관의 판단이다. 그런데 점유를 판단하는 근거가 집행관마다 천차만별이다. 현장에 유체동산만 존재하여 채무자 명의의 서류를 찾을 수 없거나, 반대로 수많은 명의의 우편물의 존재만으로 점유자가 다르다고 판단하여 집행을 불능처리한다. 현장에서 만난 신분도 확인할 수 없는 점유자의 진술에 의존하기도 한다. 집행관의 재량에 따라 집행을 안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집행관은 일정 기간 이상 법원 또는 검찰공무원으로 근무한 사람 중에서 지방법원장이 임명한다. 집행관은 법원과 검찰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강제집행’과 관련된 업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강제집행의 기본이 되는 민사집행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집행관의 임기는 4년이고 연임이 불가능하다. 즉, 강제집행에 대한 전문성을 갖출 시간이 없다. 그럼에도 집행현장에서의 재량권이 생각보다 많다. 집행관도 전문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집행관 선발방식을 바꿀 수 없다면 적어도 일정한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의 재량권이 필요한 업무라고 하더라도 예측 불가능한 강제집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민경 법무법인 명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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