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리 강가 버드나무에 물 올라

양근은 이름처럼 귀한 분들 살아

‘한국 천주교회 창설 주역’ 이벽…

천진암 계곡 따라가면 독서당 나와

양지 바른 곳에 책 읽듯 누워있어

양근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오밋다리 근처 양근성지. /최철호 소장 제공
양근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오밋다리 근처 양근성지. /최철호 소장 제공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강은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강원·충청·경기·서울을 동서로 가로질러 교하에서 조강 지나 인천 앞 서해로 가 끝난다. 아니 한강은 바다의 시작이 된다. 514㎞ 다 한강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은 소양강에서 홍천강 지나 양평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만나 수많은 이름으로 흘렀다. 한강은 팔당대교 지나 왕숙천 만나 송파강, 중랑천 만나 동호, 경강 지나 만초천 만나 용산강, 그리고 서강과 양화진으로 불렸다. 또한 삼성산 안양사에서 시작한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 공암진과 양천강이라고 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강가 버드나무에 물이 오른다. 축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마다 색이 살며시 바뀌는 찰나다. 봄비에 버드나무는 연두색이 스며들었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이 산속 진달래요, 강가엔 연두색 물오른 버드나무다. 양평 가는 한강 변에 유난히 버드나무가 즐비하다. 양평 이름은 양근과 지평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양근향교와 지평향교는 있어도 양평향교는 없다. 버드나무 뿌리같이 질긴 생명력을 갖춘 양근(楊根)은 이름처럼 귀한 분들이 살았다.

250여 년 전 그들은 왜 한양에서 한강을 거슬러 광주와 양근까지 왔을까? 정약용의 아버지 정재원과 남인 세력인 권철신과 권일신 형제는 한강 변 광주와 양근에서 학문에 매진하며 두문불출 세상과 떨어져 살았다. 광주와 양근에 성호 이익 문하생들이 모였다. 젊지만 시대를 분석하고, 세상을 설계하고자 성리학 너머 서양학과 천주학 서적을 보며 강학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를 창설한 주역이 광암 이벽이다. 그는 수표교 근처에서 살며 당대 최고의 천재들을 만나러 한강 거슬러 양근에서 강 건너 광주 천진암까지 갔다.

꾀꼬리가 알을 품는 듯한 광주 앵자봉 기슭 천진암. /최철호 소장 제공
꾀꼬리가 알을 품는 듯한 광주 앵자봉 기슭 천진암. /최철호 소장 제공

정약용 글 속에 산속 천진암 이야기가 나온다. ‘1779년 천진암에서 강학할 때 이벽이 밤중에 와 여럿이 촛불을 밝히고, 경서 읽고 담론하였으며… 1797년 단옷날 두 형님과 천진암에 오니, 이벽 독서처가 아직도 있구나!’. 당시 글 속 정약용은 17세, 셋째 형 정약종은 19세, 둘째 형 정약전은 21세, 매형인 이승훈은 22세이니 모두 젊은 나이다. 무슨 공부를 했을까? 정약전·정약종·정약용 형제는 광주 마재에서, 권철신·권일신 형제는 양근에서 한강 따라 산 넘어 천진암까지 와 학문을 연마하고, 독학으로 서학을 익혔다.

25세 이벽은 책을 통해 서양 학문과 천주교를 만났다.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 천진암에서 강학하고 토론하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도대체 천진암(天眞菴)은 어디인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1203 깊은 산속에 있다. 천진암은 오래된 사찰로 종이를 만드는 조지서 역할을 했으나 사찰은 폐사되고, 사람이 살지 않는 거처가 되었다. 이곳에서 젊은 천재들이 공부하며 스스로 천주교의 시작을 알렸다. 이벽은 최초 영세자 이승훈을 통해 ‘세례자 요한’이라는 세례명으로 조선 천주교회 창설 주역이 되었다.

천주교 창립 선조 5위 묘역 중 광암 이벽 세례자 요한의 묘. /최철호 소장 제공
천주교 창립 선조 5위 묘역 중 광암 이벽 세례자 요한의 묘. /최철호 소장 제공

천진암 깊은 산속 계곡 따라 올라가면 250여 년 전 그들의 독서당이 나온다. 젊은 시절 밤낮으로 책 보던 공간 아래 약수터에서 물 먹고 몸 씻고 책 보던 양지 바른 곳에 그들이 잠들어 있다. 정약종·이승훈·이벽·권일신·권철신 다섯 분이 조용히 책 읽듯 누워있다. 움이 트고 싹이 돋는 그 자리에 꽃 피는 봄날 함께 가 볼까요.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