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충분하잖아요… 물류 강점 인천, 첨단농업 명당 아닐까요”

‘1차산업’은 땅, 산, 바다 등 자연환경을 직접 이용해 필요한 물품을 얻거나 생산하는 원시 산업이다. 1차산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땅을 일구는 농업이다. 농업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산업으로 꼽힌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산업 역할을 해왔다. 1차산업인 농업 현장을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에서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는 경험할 기회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한 인천 출신 젊은이가 농업에 뛰어들어 성공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이 젊은이에게 농업은 더 이상 원시 산업이 아니라 우리 미래를 밝게 만들어 줄 첨단 산업이다. 이번 아임프롬인천 초대 손님은 전라남도 고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스마트팜 ‘조용한농장’ 대표 청년 농부 김승한이다. 고흥에 있는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찾아가 김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1994년 인천 남구 주안에서 태어났다. 인천 미추홀구 옛 주안주공아파트에서 출생했고 성장기를 미추홀구 간석동 우성아파트에서 보냈다. 김 대표는 자신을 “사랑을 굉장히 많이 받고 자란 친구였다”고 소개했다. 남들보다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살도 많이 찐 모습이지만 어렸을 때 제가 생각해도 굉장히 귀여운 모습이었거든요. 주변 분들이 모두 많은 사랑을 주셨고, 그중에서도 부모님이 정말 큰 사랑을 주신 것 같아요. 제 입으로 말하기 뭣하지만 저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제 주변에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웃음)
태권도협 일 하시던 아버지 덕
운동 좋아해 각종 무술 20단 이상
“반 발짝 더 나아가는 끈기 배워”
김 대표 부친 김주영(62)씨는 고향이 인천이다. 모친 최우정(63)씨는 서울 출신이다. 유복한 가정이었다. 부친은 주안역 지하상가에서 옷 장사를 했다. 장사가 참 잘 됐다고 한다. 부친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부평에 태권도장을 개업해 관장으로 활동한다. 김 대표 부친은 어렸을 때 꿈이 태권도 국가대표였다. 김 대표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간석동에서 탁구장을 운영 중이다. 김 대표는 아버지가 일하시던 태권도장에서 영화 배우 성룡과 만났던 기억이 있다고 소개했다. 정두홍 무술감독, 배우 이상인 등을 만났던 기억이 있다. 김 대표의 부친은 태권도협회 관련 일을 맡아 하셨고 그것이 인연이 돼 유명인들이 태권도장을 자주 찾았다.
“10살 즈음. 아버지가 집으로 전화를 주셨어요. 빨리 태권도장으로 오라고 하시며 영화배우 성룡이 왔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간석동에서 산곡동까지 버스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갔어요. 악수하고 사진 한 번 찍고, 제가 성룡 아저씨에게 텀블링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그냥 머리 한 번 쓰다듬고는 웃고 가더군요.”
태권도 국가대표가 꿈일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는 아버지 영향으로 김 대표는 다양한 운동을 경험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이스포츠단에서 수영을 시작했고, 고교 졸업 후 수영강사 직업을 갖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 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웠고 중학생 시절에는 복싱, 검도, 합기도, 특공무술, 유도 등을 익혔다. 이것저것 합치면 20단은 조금 넘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공부에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부모님도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체력만큼은 자신이 있어요. 제가 농사일을 하는데 지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체력에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운동이 체력보다 끈기를 길러주었던 것 같아요. 운동을 하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 힘들고 지쳐 그만두고 싶을 때가 찾아와요. 그때 그 순간 골인 지점을 앞두고 있기도 하고, 대련 운동 같은 경우는 조금만 더 버티면 상대방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와요. 그 순간 반 발짝 앞선다면 이기거든요. 그 반 발짝을 더 나가기 위해 평소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하는 거죠. 그 반 발짝 차이로 승패가 엇갈린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계속 느껴왔어요.”

김 대표는 꿈이 많았다. 과학자,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영화배우, 한의사 등 수시로 바뀌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과학상자’의 재미에 빠져 과학자의 꿈을 가졌었고, 인천에 생긴 실내 빙상장에서 스피드스케이팅을 접하면서는 스케이트 선수가 되는 꿈을 잠시 꾸었다. 중학생이 된 무렵에는 배우가 되는 꿈을 꿨다. 실제 연극 무대에 단역 배우로 서기도 했고, TV 프로그램 재연 배우로 잠시 출연한 경험도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공부를 강요하는 법이 없었다. 대신 아버지는 늘 “인생을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 빼고는 다 해봐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의 첫 직업은 스포츠센터 수영 강사였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깨닫고 1년 여 만에 그만두고 입대했다.
의료기계공학 전공… 유학 꿈꿔
독어 배우며 준비했지만 좌절
어머니와 대화중 스마트팜 관심
전역 후 뒤늦게 대입 준비에 나섰다. 재수학원에 등록했으나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하는 공부가 그에게 쉽지 않았다. 활동량이 많던 그에게 공부는 고역이었다.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인터넷 강의 틀어놓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공부하는 방식을 택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 대학의 의료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처음에는 사실 의대를 가고 싶었다. 남을 도와주는 직업을 갖고 싶었는데, 의사라는 직업이 가장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이 아쉬웠다. 대학을 골라야 할 시점 우연히 만난 TV뉴스 한 꼭지가 독일의 의료기계공학에 관한 내용이었다. 의사들이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기계를 공부한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이로 25살에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과에서 거의 꼴찌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공부를 해보기로 한만큼 결실을 거두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 1학기가 끝날 때는 과 수석을 차지했고 2학기에도 마찬가지였다. 2학년도 수석을 차지하며 대학 4년 가운데 3년을 학비 부담 없이 공부했다. 인천에서 충청도까지 통학했다. 공부만 했기 때문에 대학생활이라고 들려줄 이야기가 많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졸업 평점은 4.2다.
그가 통학을 한 이유는 단순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의료기기 기술이 발달한 독일로 유학을 가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평일에는 독일어 공부도 해야 했는데, 충청도에는 마땅한 독일어 학원이 없었다. 평일 학교가 끝나면 저는 서울 용산에 있는 독일 대사관에서 독일어를 4년 동안 배웠다. 독일어를 익히려고 무작정 인천국제공항을 찾기도 했다. 여객터미널에서 독일인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으면 무작정 ‘구텐 탁(Guten Tag)’ 인사를 보내고 대화를 시도했다. 학비가 부족해 독일 유학이 여의치 않아 대학교 은사님이 운영하는 의료기기 회사에 연구원으로 1년여 일하기도 했지만, 독일 유학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가 농업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어머니와 산책하며 나눈 대화가 우연한 계기가 됐다. 스마트팜이 늘어나면서 요즘은 농사가 한결 쉬워지고 인공지능(AI) 기술도 접목해 더 과학적으로 농사를 짓는다더라는 TV뉴스를 인용한 어머님의 이야기였다. 귀가 솔깃했다. 자세히 알아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의료기계에 관련한 공부를 한 자신의 전공과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국내 농기계 회사가 유럽과 비교하면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만큼 농사일을 경험하면서 첨단 농기계를 직접 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떠올랐다.
20개월간의 청년창업과정 입교
“화학·생명·전기 등 지식 중요”
수료후 고흥서 유리온실 농장
경매 1등도… 연매출 수억 올려
그렇게 2022년 10월 전남 고흥에 있는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 진행되는 20개월 과정의 스마트팜 청년창업 보육과정에 입교했다.
청년농부 김승한의 현장은 논밭이 아니라 스마트팜이다. 스마트팜은 비닐하우스·유리온실·축사 등에 사물인터넷·빅데이터·인공지능 기술과 로봇 등의 기술을 접목해 작물과 가축의 생육환경을 원격·자동으로 적정하게 유지·관리할 수 있는 농장을 말한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스마트팜 청년창업 보육과정 교육은 만만치 않았지만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공부에 큰 도움이 됐다.
“도시에서 자란 저에게 농사는 생각보다 많이 어렵게 느껴지더군요. 과학 지식도 필요했습니다. 대학교 때 배운 화학 공식이 튀어나오고, 미생물 등 생명공학에 대한 지식도 중요했습니다. 전기도 알아야 할 것이 많았어요.”
교육을 마치고 어렵게 자금을 마련해 지난해 ‘조용한농장’을 창업했다. 4천900여㎡(1천500평) 규모의 유리 온실에 겨울에는 딸기를 키우고 여름에는 멜론을 키우는 농장이다. 시끄러운 농기계 엔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조용한농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일터가 시끄럽지 않고 조용했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있다. 교육과정 동기생 3명과 팀을 이뤄 농장을 운영 중이다. 경험은 짧지만 벌써 수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농장의 딸기는 당도와 산도가 적절하게 균형이 잡힌 것이 차별화된 경쟁력이다. 무조건 달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새콤달콤한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수시로 체크하고 점검한다. 그가 키우는 딸기는 절반은 인터넷 쇼핑으로, 절반은 공판장 경매를 통해 유통된다. 가끔은 경매에서 1등을 하기도 하고 꾸준히 2등은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초보 농부가 경매에서 1·2등에 오르기는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그는 일을 하는 만큼 바로바로 돌아오는 보상이 농업의 큰 매력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오늘 밤을 지새 일하면 당장 내일 맛있는 딸기를 수확할 수 있고요. 당장 1주일 뒤에 수확량이 더 많아지기도 합니다. 즉각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엄청난 매력입니다.”
“언젠가 사람 대체” 농기계 관심
“외국은 이미 시작, 더 연구할 것”
비슷한 나이 또래 대기업 다니는 친구와 비교해도 결코 소득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그는 첨단 농업이 청년들도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강연에 나가면 가장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이 ‘농사를 해보려 하는데 어떤가요?’라는 식의 질문입니다. 저는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고 추천합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결국 농사도 일입니다. 그냥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도전하면 무조건 망합니다. 농사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는 고향 인천이 미래 농업에 투자를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인천·경기·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아주 큰 시장이라는 점에서 저는 인천이 농업을 하기에 정말 좋은 지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특히 인천은 물류에 강점이 있어요. 인천이 수도권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도시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아직 인천에 농지가 많은 걸로 알고 있고요. 이미 아파트는 충분한 것 아닌가요. 가끔 빈집이 늘어난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무작정 개발하기 보다는 농업에 관심을 가져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