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바버 저서 ‘대통령의 성격’

정치적 승리 거뒀을 때 모습 봐야

이때 습득한 스타일, 이후에 반복

‘스토리 있는’ 정치인 집착 줄이고

눈속임하는 후보에게 속아선 안돼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는 지금 계엄과 그에 따른 대통령 탄핵을 놓고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대통령을 둘러싼 국가적 혼란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다. 21세기 들어 벌써 세번째 대통령 탄핵이고, 탄핵이 아니더라도 이승만부터 윤석열까지 13명의 대통령 중에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도덕성과 역량 모두 부족했던 것이다. 유권자 입장에서 사전에 좋은 대통령감을 가려내는 작업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매번 반복되는 이런 사태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정치인과 대통령을 보는 시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말을 잘하거나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러나 후보로서 멋있어 보이는 것과 대통령이 됐을 때 통치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대통령으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수행 능력 중심으로 대통령을 예측하고 평가하는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

좋은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에 대한 이런 고민은 당연하게도 대통령제를 처음 만든 미국에서도 이미 하고 있었다. 필자가 대학 다닐 때 정치학 수업에서 ‘대통령의 성격’(Presidential Character)이라는 이론을 흥미롭게 배웠던 적이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제임스 바버가 1972년에 쓴 ‘대통령의 성격’이라는 책 제목에서 유래한 이 이론은 미국 대통령들의 성격을 그가 대통령직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투자했는가와 자신이 하는 일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네 가지 유형, 즉 적극적-긍정적, 적극적-부정적, 소극적-긍정적, 소극적-부정적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지 한참 지나 책을 자세히 읽어보니 이 책의 주제는 단순히 대통령의 성격형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대통령 후보였을 때 기대했던 모습과 대통령에 당선된 후의 모습이 달라지는 정치인들에게 자주 당혹감을 느끼는 유권자들에게 그 간격을 줄일 수 있도록 예측 기준을 제시하려는 것이었다.

바버는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가 보여줄 세계관이나 일하는 스타일을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선거에 임박한 최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음으로 독자적인 정치적 승리를 거뒀을 때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중 앞에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이 첫 번째 정치적 성공의 시기에 자존감이 급격하게 커지게 되는데, 이때 습득한 스타일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통령의 삶의 초기에 주목하는 것은 이후에는 이미지 메이킹 기술을 습득해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좀 더 나은 대통령을 예측하고 선택하기 위해서 필요한 또 한 가지 인식 전환은 소위 ‘스토리 있는’ 정치인에 대한 집착을 줄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재미있고 극적인 전개가 있는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듯이 남다른 굴곡과 경험을 가진 정치인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모두 평범한 인생은 아니었다. 윤석열도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국민에게 준 임팩트가 작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은, 엄청난 인생 스토리를 가졌거나 국민의 주목을 끈 정치인에게 우리가 큰 매력을 느끼고 그들을 선택하지만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자기 성공과 경험을 절대시하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는 경향도 크다는 점이다.

지금은 대통령 탄핵으로 혼란을 겪고 있으나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제 새로운 유형의 정치인과 대통령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여타 선진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산 인물도 좋은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위에 거론한 대통령들은 나름대로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과거 식민통치와 전쟁의 상흔을 씻어내고 근대화와 민주화에 명운을 걸던 시대가 만들어 낸 어쩔 수 없는 과거형의 지도자들이다.

차곡차곡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와 실행력을 길러 나가고, 소박한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을 느낄 줄 알며, 이웃의 작은 마음의 변화도 민감하게 느낄 줄 아는 그런 대통령이 적합한 시대가 왔다. 그런데 그 평범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능력은 바버가 말했듯이 생각보다 일찍 형성된다. 당장의 인기와 지지를 위해 눈속임하는 후보들에게 속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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