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구 건물 관리소장 근로자 미인정
“고용계약서 합의… 부당한 결정”

한 건물에서 20년 넘게 일한 관리소장이 퇴직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할 처지다. 노동당국은 근로기준법상 그는 근로자가 아니라며 퇴직금 체불 진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양구 한 건물에서 관리소장으로 일했던 박운수(71)씨는 지난해 12월 입주자 대표로부터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 박씨는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작전동 A건물을 관리하며 관리비(공과금) 징수·운용, 시설 수리, 청소, 주차 관리 등을 했다.
박씨는 “처음 10년 동안은 계약서도 없이 입주자 대표의 지시에 따라 일하다 2011년에야 연봉, 퇴직금, 근무 수칙 등이 적힌 1년 단위 고용계약서를 작성했다”며 “이후 별다른 갱신 없이 구두로 합의해 동일한 조건으로 일했는데, 계약서에 적힌 대로 당연히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했다. 그가 작성한 고용계약서에는 ‘매 전년 말에 퇴직금을 포함해 연봉계약으로 작성할 것’이라는 규정이 적혀 있다.
이에 박씨는 올해 1월 고용노동부 인천북부지청에 퇴직금 체불 진정을 제기했으나, 1개월 뒤 ‘퇴직금 체불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안내를 받았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 정한 퇴직금 지급 대상은 ‘하나의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근무하며 1주간 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인 근로자’다.
인천북부지청은 ▲지휘·감독을 하는 입주자 대표가 사실상 없어 지휘 감독이 없었던 점 ▲소정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등 근로조건이 정해지지 않은 점 ▲박씨가 자신의 계좌로 입주민들로부터 관리비를 수령해 관리한 점 등을 들어 박씨를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고용계약서에 합의한 내용에 따라 관리 규약과 근무 수칙을 근거로 일을 했다. 매달 정산한 관리비를 입주자 대표에게 결재받기도 했다”며 “‘일을 지시한 사람이 불명확해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며 퇴직금을 주지 못한다는데, 어떤 사람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24년간 하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최근 박씨는 인천북부지청의 사건 종결 결정이 부당하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넣었다.
이를 두고 인천북부지청이 근로자의 범위를 좁게 해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이 관련 판결(2018다229120)에서 ‘근로제공관계의 실질은 계약의 형식보다 근로제공자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은성 노무사(샛별노무사사무소)는 “매달 입주자 대표의 결재에 따라 근무가 이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최근 대법원 판결은 근로자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에도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다”고 했다.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