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전쯤부터 밤마다 정체불명 소음

가족들도 같은 소리에 불안하다고

아내, 소음의 정체 알아낸거 같다며

몸 불편한분 보행기 미는 소리 같아

이웃집 소리는 살아있다는 신호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우르렁 우르렁… 쿵!

한 달 전쯤부터 내가 사는 아파트 위층 어느 집엔가에서 밤마다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소음이다. 처음에는 먼 데서 울리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는데 맑은 날에 그럴 리는 없기에 무슨 소린가 싶어 귀 기울여 들어보면 무거운 물건을 끌고 가다가 내려놓는 소리 같기도 하고 드릴로 벽에 구멍을 뚫거나 못질하는 소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물건을 끌고 가다 내려놓는 소리라면 날마다 같은 소음이 들릴 리가 없고, 드릴이나 못질하는 소리라면 한밤중이나 새벽 4~5시에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반이 약해져 건물이 흔들리는 소리이거나 건물에 문제가 있어 균열이 생기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어서 나도 모르게 불안해지고 신경이 절로 곤두서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혹시 내게만 그런 소리가 들리나 싶어 가족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가족들도 같은 소리에 불안하다고 한다. 이명이나 환청도 아닌 것이다. 무슨 소리일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지만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뒤에는 엘리베이터 안에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최근 층간소음으로 입주민 간 민원이 잦으니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을 관리사무소에서 붙인 것이다.

안내문이 붙은 뒤 소음이 잠깐 줄어드는가 싶었지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소음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소음의 크기가 약간 줄었나 싶었지만 들리는 빈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낮에는 다른 생활 소음 때문에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새벽이 되면 예의 그 소음이 잠자리를 뒤척이게 했다.

뜻하지 않은 소음 때문에 일상이 조금은 불편해져 있던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아내가 소음의 정체를 알아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가족들이 귀를 쫑긋 세우자 아내는 아무래도 몸이 불편한 분이 보행기를 밀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소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 낮에 어느 어르신이 밖에서 보행기를 밀고 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가족들이 무릎을 쳤다. 소리가 들리는 패턴을 생각해 보면 아귀가 꼭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른 생활 소음이라면 밤낮없이 소리가 들릴 리 없고 더욱이 새벽에 그런 소리가 날 리 없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분이 새벽에 깨어 보행기를 밀면서 화장실 가는 소리라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아마도 우르렁거리는 소리는 보행기 바퀴 소리일 것이고 덜컹거리는 소리는 화장실 문을 여닫는 소리일 것이다. 아내는 소음이 왜 발생하는지 윗집에 물어볼 생각을 잠깐이나마 한 적도 있지만, 미처 묻지 않은 것이 되레 잘됐다고 했다. 물어봤더라면 그분이 아랫집을 의식해 보행기에 의지해 걷는 일을 줄이려고 할지도 모르고, 또 우리 식구들은 이제 이유를 알 것 같으니 괜찮은 게 아니냐 했다. 가족들은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사는 윗집에서는 종종 아이들 뛰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그래야 주말에 몇 번, 1년에 고작 며칠 정도일 뿐이다. 그때 나는 어린 손주들이 콩콩거리며 달려와 어른들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그려보며 그 소리가 더 자주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층간소음 문제는 소음 자체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저녁 식탁의 대화에서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딸아이는 저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 수도 있겠다며 이른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 가족을 불편하게 했던 층간소음은 사라졌고 우리는 이른 아침마다 그 소리로 이웃의 안부를 듣는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내는 소리는 소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들리는 떠들썩한 소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신호인 것처럼 이웃집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웃이 살아 있다는 신호이기도 함에랴. 층간소음은 이웃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이웃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웃이 있으면 층간소음은 사라진다.

우르렁 우르렁 쿵! 이웃의 소리를 벗 삼아 요즘 우리 가족은 잘 잔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