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도 노력도 반복도 방향 잃으면

도로아미타불… 1만시간 해도 그래

여야 무한대립, 국가·국민은 안보여

비상계엄 겨울 어정쩡하게 머물러

한줄기 봄바람에 옷 벗어던지지 말라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

‘카네기홀 조크’가 있다. “카네기홀에 어떻게 가나요”라는 물음에 한 음악가가 “연습, 연습, 연습”이라고 답했다는 거다. 이는 미국의 코미디언 잭 베이가 만든 우스개로 알려졌지만 확실하지 않다고 뉴욕 타임스가 2009년 11월27일자에 보도했다. 1891년 개장한 카네기홀 기록보관소에는 이 우스개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그저 항간에는 “연습, 연습, 연습”이라고 말한 주인공이 노년의 거리 악사로 전해져 온다. 그만큼 카네기홀은 모든 음악인에게 꿈의 무대로 불린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조성진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도 연주회를 가졌다. 2010년에는 대중가수 인순이가 이 홀에서 이틀에 걸쳐 공연하기도 했다.

천재는 1%의 재능과 99%의 노력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800곡의 주옥 같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 모짜르트, 마소(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예스터데이’로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비틀스도 사실은 엄청난 노력의 결과라는 거다.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맬컴 글래드웰이 저서 ‘아웃라이어’에 소개한 개념이다. 어떤 분야에 선천적인 재능이 없더라도 1만 시간을 천착하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거다.

다른 듯 비슷한 우리 속담이 있다. 서당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거다. 천자문부터 공맹(孔孟)의 가르침까지 매일 듣다 보면 비록 강아지일지라도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경지에 오른다는 이야기이다. 바로 당구풍월(堂狗風月)이다. 어떤 분야에 지식과 경험이 없어도 오랫동안 정진하면 얼마간 전문가인양 흉내라도 낸다는 뜻이겠다. 바로 반복의 힘이다. 그러고 보면 하루 9시간씩 3년이면 1만시간이다.

지난 17일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1000 전영오픈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안세영 선수의 소감이 그랬다. 그는 인터뷰에서 “반복에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드민턴에서 한 세트 한 게임도 아닌 1점을 두고 50~80번의 샷이 계속되면 털끝만한 집중력 차이가 승패를 가른다. 클리어와 헤어핀 드라이브의 난타전을 극복해내는 힘은 무한반복을 견디는 데서 나온다. 한편으로는 훈련 과정에서 이러한 무한반복이 실전에서 순간의 실수를 최소화하는 비결 아니겠나. 안세영이 말한 반복의 힘은 카네기홀의 “연습, 연습, 연습”과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의 연장선이겠다. 결국 인생도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처하느냐 여부에 평범과 비범이 갈릴 것이다.

헌데 연습도 노력도 반복도 방향을 잃으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아무리 1만 시간을 쏟아부어도 그렇다.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상황에선 기진맥진하게 될 뿐이다. 음악에서 도돌이표 연속이고, 고장 난 레코드에 불과하겠다.

우리네 정치가 그렇다. 여야 무한대립의 끝에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내일은 보이지 않는다. 연습도 노력도 아니다. 그저 대립을 위한 대립만이 반복될 뿐이다. 서로 대립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찾는 거다. 새벽이 오지 않는 적과의 동침, 하염없이 표류하는 오월동주(吳越同舟)인 셈이다. 이는 반복의 힘이 아니라 무한반복의 저주이겠다.

동백꽃 떨어진 산기슭에 진달래가 핀다. 기온도 섭씨 20도를 넘나든다. 3월의 대설주의보에 놀랐던 가슴은 완연한 봄기운에 기지개를 켠다. 무한 반복되는 사계절이지만 새 봄에는 새 생명을 기대하게 된다. 과연 대립의 쳇바퀴를 달리며 과거로 퇴행하는 도돌이표 우리네 정치에도 생명이 싹트는 봄이 올까. 12·3 비상계엄의 겨울이 경칩과 춘분을 지나서도 어정쩡하게 머무르고 있다. 여전히 날은 건조하고 바람은 강하며 밤은 싸늘하다. 춘오추동(春春秋凍)이라 했다. 한 줄기 봄바람에 옷을 훌훌 벗어 던지지 말라는 거다. 가을이라고 서둘러 옷을 껴입어서도 안되지만 말이다. 그렇다. 아직 혹독할 수 있는 꽃샘추위가 저만치 웅크리고 있다.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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