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취업 장수생’ 눈에 띄게 늘어

1인당 국민소득, 2년째 일본 앞섰지만

산업구조 고도화·노동 유연화 합작품

‘민주주의적 자본주의가 약자 내몰아’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요즘 대학가의 신입생 환영행사는 다채롭고 풍성하다. 글보다 동영상에 친숙한 Z세대 신입생 배려차원이나 코로나19 때 선후배 사이에 상견례도 못했던 아픈 기억 탓에 새내기들이 더 소중하고 반갑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25학번들은 선배들이 마련해준 잔칫상이 반갑지만은 않다. 졸업을 미룬 ‘취업 장수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주요 대기업들이 신규채용을 줄이면서 중견·중소기업 취업경쟁률도 수백대 1이다.

지난 1월 청년층 실업률은 6.0%로 1년 전과 같았고, 실업자 수는 23만명으로 1만6천명 줄었지만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고용 상황을 의미하는 체감실업률은 1년 전보다 0.8%P 오른 16.4%로 4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체감실업률이란 공식적인 실업률에는 잡히지 않지만 더 나은 일자리를 원하는 단시간 근로자·잠재구직자·잠재취업가능자 등을 포함한다.

고용의 질도 나빠졌다. 통계청의 지난해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정규직은 1천368만5천명으로 1년 전보다 14만7천명 감소했다. 반면에 비정규직은 845만9천명으로 전년 대비 33만7천명 증가했다.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38.2%로 전년보다 1.2% 증가해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2024년 6∼8월 평균 174만원으로 통계작성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청년들의 근로 의욕이 꺾여 “그냥 쉰다”고 답한 청년들도 늘고 있다. 지난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29세 청년층의 ‘쉬었음’ 인구가 50만4천명으로 전년 같은 달 대비 6만1천명이 증가했다. 청년층 쉬었음 인구가 50만명을 넘어선 것은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최초다. 쉬었음은 일을 하거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쉬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한국은행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미스매치 현상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삶의 만족도도 나빠졌다. 지난 2월 통계청의 ‘국민 삶의 질 2024 보고서’에서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2021∼2023년 평균 6.06점으로 OECD 평균(6.69)을 크게 밑돌았다. OECD 38개 회원국 중 33위이다. 한국보다 삶의 만족도가 낮은 나라는 포르투갈, 헝가리, 그리스, 콜롬비아, 튀르키예 등이었다. 삶의 만족도는 객관적 삶의 조건에 대한 개인들의 주관적 만족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0∼10점으로 측정하는데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낮게 나타났다. 자살률은 2023년 인구 10만명당 27.3명으로 전년 대비 2.1명 증가했다. 자살률은 2011년 31.7명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이후 감소추세였으나 2017년 이후 다시 증가세다. 범죄 피해율은 2022년 인구 10만명 당 6천439건으로 2020년(3천806건) 대비 급격히 증가했다. 2023년 3분기의 국내 마약 적발 건수는 2만230명으로 통계작성 이래 처음으로 2만명을 넘어섰다.

한편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6천624달러로 2년째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6위’의 대기록을 세웠다. 산업시설 해외이전, 산업구조 고도화 및 고용 안정성을 파괴하는 노동 유연화의 합작품이나 세계 최저의 저출산 기록행진은 어쩔 것인가. 미국 트럼프 정부의 부활로 승자독식의 카우보이 자본주의는 더욱 탄력받을 예정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학 명예교수는 민주주의적 자본주의가 절대다수의 경제적 약자들을 한계상황으로 내몬다며 우려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마틴 울프 수석경제평론가는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로 진단했다.

이민연구의 권위자 헤인 데 하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하지만 불평등은 커졌고 임금은 정체되거나 하락했다. 젊은 세대들은 경제적으로 더 불안하다. 정치인들이 노동시장 규제를 완화하고 고용 안정성을 떨어트리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잠식하고 임금을 하락시키는 등 소득불평등 정책을 의도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라 일갈했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