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예방 디자인’ 활용 최근 활발
치안력 한계, 주민·지자체가 보완
‘여성 안심 귀갓길’ 좋은 협력 예시
한국, 손꼽히는 안전한 나라 인식
이 성과는 특정기관·개인 힘 아냐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전하기를 바라는 욕구를 가진다. 저명한 심리학자 매슬로우(A. H. Malow)도 이를 ‘욕구 5단계’의 두 번째 단계에 올려놓았다. 그만큼 기본적인 욕구라고 볼 수 있다.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개인의 성장에 여러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불안과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안전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안전을 위한 사회적 투자 중의 하나가 범죄를 예방하는 환경 조성이다. 생활환경도 빠질 수 없으며, 사회가 발전할수록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범죄예방디자인(CEPTED)’이란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지자체가 지역사회의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시범사업 등을 통해 이 디자인을 최근 활발히 활용하고 있다. 인구소멸 위기가 고조되면서 정주환경 개선 차원에서 이 사업을 앞다퉈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안전하지 않은 곳에 누가 살고 싶어 하겠는가? 인구를 끌어들이거나 붙들어 두기 위해서 필수 사업이 돼가고 있다. 마치 인간의 기본 욕구처럼 말이다.
경기 북부지역에서도 범죄예방 디자인사업을 벌이지 않는 지자체가 없을 정도로 보편화하는 추세다. 인적이 드물어 우범화가 우려되는 골목에 벽화를 그리고 조명을 밝히는 등의 방법으로 범죄율을 낮추고 주민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사람이 많이 다니는 즉, 유동인구가 많은 도로변이 오히려 불안감을 느끼는 정도가 더 크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통계청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울시가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동인구가 많은 가로 공간에서 느끼는 불안감 수치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예방디자인이 주목을 끄는 것은 단순히 범죄를 줄이는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치안력의 한계를 지역주민과 전문가, 지자체가 협력해 보완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가 활성화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효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동네의 안전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표어가 현실화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 사회에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모든 안전을 국가나 공권력에만 의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안전을 방어하고 살기 좋은 사회로 가꿔가는 일은 진정한 의미에서 범죄예방이자 안전사회의 초석으로 여긴다.
요즘 들어 도심 골목에서 눈에 자주 띄는 ‘여성 안심 귀갓길’은 이런 협력의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주민들은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찾아 경찰의 협조를 얻어 CCTV와 경찰과 연결되는 가디언 벨 등을 설치하고 지자체는 센서형 조명이나 조명 건물 번호판을 세우고 시야를 가리는 담을 낮추거나 아예 허물어 안심 골목길을 조성한다. 이런 일련의 환경조성은 주민이나 경찰, 지자체 단독으로는 어렵거니와 효과도 보장할 수 없다. 모두가 협력을 통해 안전에 노력을 기울이는 행위 자체가 범죄율을 낮추고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된다.
이 같은 안전환경 조성은 단발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협력을 낳고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더욱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범죄예방 분야의 거버넌스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고 안전환경 조성에 머물지 않고 유지와 관리에 있어서도 주민들의 협력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여성 안심 귀갓길만 하더라도 주민들이 끊임없이 개선점을 제기하고 경찰과 지자체도 이에 부응하려 개선책을 시행하는 지역이 늘고 있는 현상이 이를 말해준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관심을 보이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보호해주겠거니 하는 안일한 생각이 위험을 키우고 불신을 조장하고 불만을 분출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어느새 세계에서 손꼽히는 안전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우리의 국격을 높이고 성숙한 시민사회임을 보여주는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성과가 특정 기관이나 개인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김명달 법무부 법무보호위원 경기북부지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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