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를 저지른 속칭 ‘건축왕’ 남헌기(63)씨 일당이 3차 기소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전 재판의 판결 결과를 언급하며 대부분 무죄를 주장했다.
인천지법 형사17단독 김은혜 판사 심리로 31일 열린 첫 재판에서 사기,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남씨 일당의 법률대리인들은 “사기 범행과 관련해 편취의 고의가 없었다”며 “있었다고 하더라도 2022년 5월27일 이후의 임대차계약 부분에 대해서만 고의를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이전 재판에서 관련 혐의들이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피고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취지로 주장했고, 남씨와 법률대리인이 선임되지 않은 피고인 등은 따로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김 판사는 “이미 합의부 등에서 정리가 된 사건인 것 같다”면서 “일부 피고인에 대해서는 오늘 변론을 종결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증거가 명확하지 않거나 추가 수사 진행 중인 부분에 대해 공소장 변경 등을 검토 중이다.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해달라”며 구형에 대한 의견은 추후 제출하기로 했다.
남씨 등은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세입자 665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536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2023년과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재판은 3차로 기소된 사건(세입자 102명, 전세보증금 82억원)에 대한 것이다.

남씨 등 일당 10명은 처음 기소된 사건에서 각각 징역 7년과 무죄·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올해 초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확정됐다. 1차 기소 사건 재판부는 남씨와 일당이 보증금 반환을 못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됐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시점 이후 보증금을 새로 받거나 증액한 사례 등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를 토대로 2차 기소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 역시 일당이 재정 악화 사실을 인지한 2022년 5월27일 이후의 임대차 계약에 대해서만 사기의 고의성을 인정했다. 이 재판부는 지난달 열린 선고 공판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횡령)까지 더해 남씨에게는 징역 15년을 선고했지만, 가짜 임대인이나 공인중개사 등 일당 30명 중 15명에게 무죄를,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3차 기소 사건 피고인은 총 29명이다. 이 재판도 앞선 대법원 판결 등을 참고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피해자들은 “공인중개사법에서 금지하는 ‘중개의뢰인과 직접 거래를 하거나 거래당사자 쌍방을 대리하는 행위’(제33조 1항 6호)를 위반했다고 보고 기소했는데, 무죄를 받았으니 검찰이 공소사실을 제33조 1항 4호 위반으로 변경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제정된 ‘전세사기 특별법’의 유효 기간은 오는 5월로 만료된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특별법 연장과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개정 입법을 국회에 촉구하고 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