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세계한국학대회 첫 개최후

정세 악화로 남북 직접 교류 불허

아직 한국학 시민권 얻지 못한 北

유력한 한국학의 제1후보 아닐까

범위 확장해줄 용자를 기다려본다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1988년 9월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체육부는 세계한민족체육대회, 소위 ‘한민족체전’을 열기로 한다. 이미 체육부는 소련과 중국 측의 동포를 유치하기 위해 올림픽 기간 중 소련 및 중국 대표단과 의견을 교환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1989년 한민족체전이 전국체전과 더불어 성황리에 개최된다. 말로만 듣던 ‘조국’을 처음 방문한 소련과 중국 출신 동포 선수들이 헤어졌던 가족들과 재회하기도 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정부는 앞으로 2년마다 한민족체전을 개최하기로 한다.

제2차 한민족체전이 열리는 1991년 9월에는 더 극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냉전의 한 축이었던 공산권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소련, 중국만이 아니라 동구권의 동포들도 한민족체전에 참가를 원하고 있었다. 제2차 한민족체전은 이제 체육인들 간의 교류를 넘어서 문화 전반으로 확대되어 열릴 계획이었다.

이 기회를 개원 후 10년을 막 넘긴 성남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정문연)이 포착했다. 체전(體典)을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맡는다면, 지전(知典)은 정문연이 담당한다는 구상 아래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한인 학자들을 모아 ‘세계한민족학술회의’라는 거창한 이름의 행사를 계획한 것이다.

정문연은 1991년 ‘세계 속의 한국문화’, 1993년 ‘세계 속의 한민족’, 1995년에 ‘한국문화의 세계화’, 1997년 ‘21세기 재외 한인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대규모 학술회의를 연달아 주최한다. 이는 해외 동포 학자들에게 고국의 발전상을 보여주고 체제 경쟁의 승리가 대한민국에 있음을 공표하는 행사였다. 그리고 이는 해외 동포들을 한국을 위한 ‘첨병’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지전(知戰)적 행사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민족체전이나 세계한민족학술회의에서 북한 동포·학자들의 참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돌파구는 2002년 세계한국학대회라는 새로운 무대가 마련되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세계한민족학술회의를 여러 차례 주관하면서 상당한 노하우를 확보한 정문연은 ‘세계한국학대회’(World Congress of Korean Studies)라는 새로운 틀을 조직했다. 한민족체전·세계한민족학술회의가 세계에 산재한 고려인, 조선족을 모두 ‘자랑스러운 한민족’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에 가까웠다면 적어도 세계한국학대회는 우리가 우리를 바라보는 한국학과 남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조선학과 코리아학이 균등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실제 2002년 7월 첫 대회를 마친 이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다음 세계한국학대회 행사를 평양에서 연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를 위한 사전교류 차원에서 2004년 북한 측 역사학자들이 정문연을 방문하여 비공개 학술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평양에서 열렸어야 할 제2차 한국학학술회의는 정세의 악화로 한국 측 학자들의 참여가 불허되었고 정문연은 부랴부랴 2005년에 대체학술회의를 중국 베이징에서 열 수밖에 없었다. 현재에도 중국이나 유럽 등 제3국에서 간접적이고 간헐적인 남북 교류만 존재할 뿐 여전히 한국학을 둘러싸고 남북한의 직접 교류는 제대로 이어지고 있지 못하다.

북한의 지속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열리고 있는 세계한국학대회는 2005년 정문연이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간판을 바꾸는데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앞서 나왔듯이 한국학은 영어로 ‘코리안 스터디즈’(Korean Studies)이다. 코리안 스터디즈에는 대한민국과 재외 한인이 당연히 포함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가 궁금해하는 우리만이 아니라, 남들이 궁금해하는 ‘코리아’도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학의 범위에 들어갈 가장 유력한 제1후보는 북한 아닐까.

한국학이라는 이름 탓일까, 아니면 불안한 정세 탓일까. 아직도 한국학에서 북한은 완전한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한국학대학원 도서관 한 쪽에는 북한 자료가 누군가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이 방대한 자료를 활용하여 한국학의 범위를 확장해 줄 용자를 기다려본다. 아니면 나부터라도.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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