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2년 뒤 의사자로 인정됐지만

성금 외 보상·관심 소홀, 유족 슬픔

“많은 이들이 희생자 기억해주길”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에 참여했다 사고로 침몰한 어선 98금양호 15주기를 하루 앞둔 1일 오전 인천시 중구 연안부두바다쉼터 98금양호 위령탑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2025.4.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에 참여했다 사고로 침몰한 어선 98금양호 15주기를 하루 앞둔 1일 오전 인천시 중구 연안부두바다쉼터 98금양호 위령탑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2025.4.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15년이 지났는데도 형님 얼굴이 생생합니다.”

1일 오전 인천 중구 연안부두 ‘98금양호’ 희생자 위령탑에서 열린 추모제에선 9명의 이름이 연이어 호명됐다. 선장 김재후, 기관장 박연주, 선원 김종평, 정봉조, 이용상, 안상철, 허석희, 람방 누르카효(인도네시아), 유수프 하예파(〃)…. 이들은 2010년 4월2일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 중 침몰한 어선 98금양호 선원들이다.

98금양호 사건 15주기를 하루 앞둔 1일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 한국해양환경감시협의회 등이 추모제를 열었다. 금양호는 2010년 3월26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 직후 실종자 수색에 자원한 어선이다. 수색을 마치고 인천항으로 복귀하던 중 캄보디아 화물선과 충돌해 선원 김종평씨 등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됐다.

금양호 선장 고(故) 김재후씨의 동생 김재흥(56)씨는 추모제에서 “1년에 서너 번씩 위령탑을 찾아 인사를 나눌 때마다 형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만 같다.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립다”며 “더 많은 이가 형님과 선원들의 희생을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에 참여했다 사고로 침몰한 어선 98금양호 15주기를 하루 앞둔 1일 오전 인천시 중구 연안부두바다쉼터 98금양호 위령탑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2025.4.1 /조재현기자 jhc@kyeonign.com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에 참여했다 사고로 침몰한 어선 98금양호 15주기를 하루 앞둔 1일 오전 인천시 중구 연안부두바다쉼터 98금양호 위령탑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2025.4.1 /조재현기자 jhc@kyeonign.com

금양호가 침몰한 지 1년 후인 2011년 중구 역무선부두에 위령탑이 마련됐다. 유족들의 노력으로 2012년 3월에야 희생된 선원들이 의사자로 인정됐지만, 유족들은 천안함 국민 성금을 제외하고 정부로부터 보상 등 지원을 일절 받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의사자 지정만 됐을 뿐 국가는 희생자에 대한 어떠한 관심과 보상도 없었다. 심지어 수습된 2구의 시신 중 1구는 여전히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고 있다”며 “국가를 돕기 위해 나섰던 분들에게 정부가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몇 년 전부터는 공사로 인해 위령탑 출입이 어려워져 일반 시민들은 이곳에 접근조차 어렵다. 정부나 인천시가 금양호를 기억하려는 노력에 소홀한 것 같다”고도 했다.

고 김재후씨의 고향 친구 이근명(64)씨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금양호 추모위원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줬으면 한다. 더 많은 이가 금양호 희생자들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창호(국·비례) 인천시의원은 “98금양호 선원들은 천안함 실종자 수색 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음에도 천안함 사건 희생자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선장과 선원들의 희생이 잊히지 않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