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 손길 안 닿은곳 없으니

우리집 지배자이자 노동의 공간

결혼한 아들방 그녀만의 방으로

그날 밤, 오랜만에 들뜬 모습 봐

윤택함 상징 ‘안채’ 오늘날도 같아

생각하고 꿈꾸는 공간. /전진삼건축평론가 제공
생각하고 꿈꾸는 공간. /전진삼건축평론가 제공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이태 전, 아들이 결혼을 하고 한동안 아들의 방으로 놀렸던 그 방을 드디어 집사람이 자기가 쓰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봄날의 일이다. 늘 텅 빈 공간에 아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던 방이 비로소 새 주인을 맞게 된 셈이다.

그전까지 우리는 사이좋게 집의 중간에 위치한 방을 우리 두 사람이 공유하는 공부방으로 사용해왔다. 통유리로 된 1면을 제외한 3면의 벽은 책장을 두르고 방의 한가운데에 두 개의 책상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배치인데, 종종 한 공간에서 서로의 관심사에 시간을 쏟으면서 대화를 나누다보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부부이며 평생 친구로서 동지적 연대감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은 기억이 많았던 곳이다.

그런데 집사람의 입장에서 판단해보니 공동서재는 말이 공동이지 책장의 책이며, 자료, 소품, 컴퓨터, 오디오 기기 등 대부분이 나의 것이고, 정작 집사람의 것이라곤 아들의 결혼 전후로 동네 행정복지센터 문화교실에서 2년째 배워오고 있는 캘리그래피 재료들과 달랑 책장 한 칸을 채우고 있는 자료들이 고작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 공간의 실질적 지배자는 집사람임이 분명하다. 안방, 거실, 중간방, 작은방, 팬트리, 주방, 다용도실, 욕실, 대피실, 실외기실, 발코니 등등 어느 공간 하나 집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란 없다. 사용 빈도의 면에서 이들 대부분이 아내의 공간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이들 중 어느 곳도 아내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사의 주체로서 집사람이 무심히 사용하게 되는 공간들은 그녀의 노동력을 가중시키고, 피로도를 높이며, 스트레스를 쌓아가는 곳이 대부분이다.

사실 아들의 방이 집사람의 방으로 거듭난 데는 손주의 탄생 소식이 한 몫을 했다. 좀처럼 아들이 써오던 공간을 일절 손대지 않고 보존해왔던 집사람에게 아들을 초월하는 최강 존재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아들과의 추억 공간을 정리하고, 마침내 자신이 전용하는 크리에이티브한 공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다.

그날, 집사람은 오후 늦은 시각에 시작하여 자정을 넘어서까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책장과 책상의 위치를 바꾸고는 안방과 공부방, 팬트리 등에 분산돼 있던 그녀의 책자, 자료, 소품, 재봉틀, 미술재료 등을 한 곳에 모아서는 성격에 맞춰 정리했다. 벽면엔 집사람이 직접 그린 그림 액자와 전문가급 솜씨의 캘리그래피 습작 본을 걸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무언가에 들떠서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아내를 보았다.

돌이켜보면 옛사람들의 주거에서, 안주인의 공간은 언제나 중요했다. 통상 안채라 불리는 공간을 중심으로 여러 가사로 돕는 공간들이 싸고 있는 형식인데, 안주인의 공간이 잘 짜여진 집이라면 분명 그 집은 내력이 출중한 가문일 확률이 높다. 현대에서도 아내의 공간이 건강하면 할수록 그 가정은 삶 자체가 윤택한 집이라 할만하다. 당신의 아내가 기품 있는 삶의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면, 오늘 그녀만을 위한 공간을 꿈꿔보시라.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