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 美 간호사로 ‘이타적인 삶’ 귀감

조선서 헌신하며 소외된 이들을 위해 힘써

母 리더십으로 아낌없이 내주던 성정처럼

올봄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되길 기원해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늦은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개나리와 목련은 한껏 꽃을 피웠고 옷이 조금씩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완연한 봄이다. 그러나 최악의 피해가 예상되는 영남의 산불, 정치적 불안감, 얼어붙은 취업시장, 물가 상승과 경제적 침체,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자국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미, 중, 러 리더들의 행보 등으로 마음은 겨울보다 더 무겁다. 이런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자신도 모르게 우울해지고 현실에 비관적으로 되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잠시 멈춰 서서 깊이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면 좋겠다.

난관을 이겨내고 멋진 삶의 궤적을 이룬 사람의 봄볕 같은 희망이 우리에게 서서히 스며들기를 바라며 독일 출신 미국 간호사 서서평(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을 소개한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이타적인 삶’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1880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녀는 3살에 자신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난 어머니 대신 할머니 품에서 자랐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기대를 품고 방문한 생모에게 다시 거부당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불행함에 함몰되기보다는 오히려 도약대로 삼아 단단함과 아량을 갖춘 사람이 되었다.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동료에게 조선에서 환자가 치료받지 못하고 길에 버려진다는 말을 듣고 1912년 운명처럼 조선으로 와서 선교사의 삶을 시작한다. 광주에서 가난하고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도왔는데 주로 버려진 과부와 고아들에게 남다른 사랑을 실천했다. 특히, 사회에서 외면당한 윤락여성들의 아픔을 공감했으며 과부들을 보살피고 14명의 고아를 수양딸로 삼아 죽을 때까지 함께 생활하면서 고국에서 지원받은 얼마 안 되는 생활비와 후원금까지 함께 나누어 썼다. 키가 매우 컸던 서서평이 5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난 원인이 영양실조였다는 사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길거리에서 추위에 시달리는 거지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담요의 절반을 나누어 준 일화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던 그녀의 성정을 보여준다.

봄볕이 만물을 따뜻하게 품듯 어려운 모든 이를, 어떤 상황에서도 기댈 수 있는 어머니 리더십으로 많은 이들에게, 특히 조선의 여성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혈혈단신으로 조선에 와서 여성들에게 자립의 삶, 간호사로 일하며 나와 남을 도울 수 있는 삶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35살이 되던 해에는 병원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는데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가 앉은뱅이 환자를 업어서 구출했던 일도 있었다. 광주에서 미국에 기금을 요청해 양잠업을 지도하고 제주에서는 고사리 채취를 도우며 여성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자 애썼다. 여성들이 스스로의 힘을 믿고 자립하고 또 그 힘을 주변에 나눌 수 있는 역량을 키우도록 힘썼다.

32세인 1912년부터 1934년 5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2년 동안 일제강점기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광주 궁핍한 지역, 제주, 추자도 등지에서 미혼모, 고아, 한센인, 노숙인들을 돌봤다. 그녀의 장례식은 광주 최초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는데 그녀의 운구 뒤로 소복을 입은 수백 명의 여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처롭게 ‘어머니, 어머니’라고 부르던 모습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서서평은 검소했지만, 먼 이국 조선의 어려운 이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내어준 ‘이타적인 낭비’를 하며 살았다. 자신의 시신은 의학용으로 기증할 정도로 삶은 물론 육체까지 조선에 모든 것을 주고 떠났다. 어머니에게 거부당하고 기댈 곳 없이 외로웠던 그녀는 바람, 햇살, 숲과 함께 자랐다고 고백했다. 그것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물설고 낯선 이국의 사람들에게 온통 베풀고 떠났으며 그녀를 아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아름다울 수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절이 수상해서…, 경제가 불안정해서…, 희망이 없는 시대야….’라는 불평은 서서평의 삶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가진 것 없어 보였던 그녀가 희망이 없어 보였던 조선 땅에서 펼친 것은 사랑이었고 그 사랑은 수많은 사람에게 기적이 되었다. 어려운 시절이다. 올봄에는 그녀가 남긴 봄볕 같은 따뜻한 사랑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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