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정 새롭게 세우기 위해
내란 뿌리뽑고 썩은 살 도려내야
공동체 규범과 사회적 합의 부족
정치검찰·경제 불평등 개혁하고
시민정신, 정치적 지성 강화해야

너무도 고마운 그 분들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 밤 그 순간에 달려가서 막아 준 그들, 이후 122일 동안 밤낮없이 모여 탄핵을 외쳐준 분들, 4월4일 이 모두를 선언으로 완성시켜준 분들.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야만과 폭압의 현실에서 위협받고 있을 것이다. 하늘의 도움이란 이 모든 외침과 몸부림을 일컫는 말이다. 이제 이 힘을 모아 해야 할 일은 민주공화국을 다시금 세우는 것이며, 우리 안의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있음은 틀림이 없다. 계엄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야만을 마무리 짓고 가야할 민주공화정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 이번 사태로 절감하게 된 것은 해방 이후 어렵게 이룩한 민주와 경제적 성장의 한계와 모순이다.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은 필요한 공동체적 규범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합의된 사회 원리였다. 마무리 이후 새로운 시작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
여전히 계속되는 내란의 힘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 썩은 살을 도려내지 않으면 이런 사태는 되풀이된다. 근대 이후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부족했던 것이라면 죄에 대한 상응하는 처벌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의 선기능이라면 무엇보다 숨어있던, 민주공화정에 반하는 세력이 그 모습을 남김없이 드러내었다는 데 있다.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을 반대한 89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을 민주공화국의 정치에서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 그들에게는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전무하다. 그밖에 남은 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헌법질서를 정면으로 거부한 한, 최 따위의 권한대행들, 계엄에 숨죽여 협력한 정치검사를 비롯한 법조인들, 목사의 탈을 쓴 극우 선동가들이 그들이다.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이들은 재빠르게 통합과 용서를 외치는 숨은 협력자들이다.
이들 기회주의적이고 파당적인 이익 집단은 언론과 지식의 탈을 쓰고, 양비론과 개헌의 옷을 입은 채 사악한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멋들어진 거짓 이론과 헛소리를 그럴 듯하게 포장한다. 이들이야말로 민주공화정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리는 이해집단이다. 계엄은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양비론을 통해 물타기 신공을 펼치는 자칭 주류 언론, 한 줌의 지식과 근엄한 이론으로 포장하는 거짓 지식인들에게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이들은 통합과 화합을 강조하면서 사익집단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이로써 민주공화정의 원리는 보이지 않게 뿌리에서부터 훼손된다. 민주주의 사회는 정치적 패배자에 대해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정의 원리를 배반하는 자를 공적으로 처치하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사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번은 비극이었지만, 그 다음은 어처구니없는 소극이 될 것이다. 그때의 우리 삶은 상상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다음 정권은 사회개혁을 전면에 내세울 것이다. 촛불 혁명이 실패로 끝난 것은 이를 통해 이익을 누린 전임 정부에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철저하지 못한 대응과 편파적인 개혁 시도가 더 큰 악을 부르지 않았던가. 이번의 개혁은 전면적이며, 민주공화정의 기본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공동체에 반하는 특권집단을 해체해야 한다. 민주공화정을 위한 거대담론과 공동체의 규범을 말해야 한다. 제헌헌법에 담긴 균등한 정치, 균등한 경제, 균등한 교육을 구현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가장 부족한 것은 여기에 있다. 교육이 망가지고 거대담론을 말할 터전이 사라진 곳에서 다만 실증적이고 즉물적인 경제담론과 이해관계만이 남아 필요한 개혁을 왜곡한다.
정치검찰과 법조개혁은 시작에 불과하다. 언론 개혁은 말할 필요도 없이 절실하다. 여기에 토대가 되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을 극복하는 개혁이다. 시민경제 없는 경제성장은 허상일 뿐이다. 이를 위한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것이 사회적이며 정치적 대응에 머물러 있다면 더 중요한 것은 원론과 규범에 대한 논의이다. 민주공화정을 위한 시민 정신이 토대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를 위한 노력과 헌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정치적 지성과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시민정신을 올바르게 정립할 때 민주공화정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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