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행처럼 번져 ‘4세’도 등장

선행학습 강도 강화… 도 지나쳐

과한 지출 유도로 ‘출산율 악순환’

학습·정서 발달 악영향까지 미쳐

범죄 수준… 경쟁교육 완화시켜야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前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前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지난 2월 ‘추적60분’에서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방송 후 댓글만 8천개 정도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도대체 7세 고시가 무엇이고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걱정하고 있는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만 5·6세 아이들이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보는 시험을 일명 7세 고시라 한다. 전국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 시험은 ‘이제 7세도 너무 늦다’란 인식이 퍼지면서 ‘4세 고시’란 말까지 등장하고 실제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선행학습이라는 광풍이 사교육시장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6학년이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미리 공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수행한 선행학습 효과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과도한 경쟁과 속도전으로 공부한 아이들의 성적은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다. ‘반짝효과’에 취해 학습의 기초가 부족한 상태로 속도만 내는 방식으로는 중장기적으로 오히려 학습에 부정적이라는 결과가 나온 적 있다. 물론 누구도 그 연구결과를 믿고 선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원에서는 이를 더욱 강화하고 부모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했다. ‘공교육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학교에서는 선행학습을 금지하게 됐지만 학원은 법 적용을 받지 않아 오히려 선행학습의 강도가 심해져 왔다.

출산율 저하로 인한 학령인구 급감은 사교육시장에 큰 위협이 됐다.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하던 입시학원들이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그 결과가 초등뿐만 아니라 영유아 대상의 사교육 수요 창출이었다. 한편 2000년 초반부터 영어유치원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기존 유치원들도 영어유치원으로 전환할 정도로 유아교육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 경쟁 과정서 고가의 수강료를 받는 영어유치원만 살아남고 중저가 영어유치원은 사라져 갔다. 이러한 고가의 영어유치원을 나온 아이들을 대상으로 초등의대반이 만들어지고 영어전문학원이 손짓을 하는 상황서 7세고시가 등장하게 된다. 24개월 유아들을 대상으로 4세 고시까지 성행한다니 도를 지나쳐도 한참을 지나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7세 고시, 4세 고시가 영어에 관한 시험이라면 수학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고시도 따로 있다.

학생시절에 IMF를 경험했던 세대가 학부모가 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경제적 불안을 자녀들에게는 결코 넘겨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에듀푸어(Edu-poor)라는 용어가 있다. 과도한 자녀의 교육비 부담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 최근 발표된 2024년 사교육비실태조사에 따르면 사교육비 총액이 29조원에 달하여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영어유치원 한달 비용이 200만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러니 자녀를 많이 낳을 수 없다. 통계에 따르면 사교육비가 1% 증가하면 출산율은 0.3% 감소한다.

이렇게 사교육비를 과도하게 지출하더라도 그 효과가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에서 관련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에 따르면 ‘학습 사교육에 참여한 경험이 많을수록 아동의 자존감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영유아기 사교육의 부정적인 영향은 사교육의 개수나 횟수, 지속성과 관련이 있었다. 또한 유아의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유아의 공격성, 위축, 우울, 불안 등의 문제행동이 증가하였으며, 유아의 행복감은 감소하였다. 사교육 지속 기간이 길어지면 사회정서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결론 내렸다.

1989년 ‘UN아동권리협약’이 발표됐고 우리나라도 1991년에 이 협약을 비준한 바 있다. 여기에는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영적 및 사회적으로 발달하기 위한 기회를 가질 권리’, ‘놀이와 여가시간을 가질 권리’, ‘학대, 방임, 착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을 명시하고 있다. 4세 고시, 7세 고시로 우리의 미래세대가 심각한 권리 침해를 받고 있다. 이 정도이면 아동학대이고 범죄수준에 해당된다고 봐야한다. 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사회의 이 광적인 경쟁교육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前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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