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3만여 주민 희생 비극

현기영 ‘순이 삼촌’ 첫 문학 형상화

김석범 ‘화산도’ 비극적 역사 재현

한강, 개인 상처·기억 섬세한 묘사

세 작가 소설들, 평화·인권 재조명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며칠 전 ‘4·3사건’이 77주년을 맞았다. 해방과 전쟁의 와중에 제주에서 일어난 4·3사건은 고립된 섬에서 7년동안 3만여 주민이 희생당한 큰 비극이었다. 1947년 3·1절 기념식 때 무력충돌이 생겼고, 경찰서 습격과 발포와 총파업과 체포 구금이 이어졌고, 드디어 1948년 4월3일 이 고립된 섬에서 대규모 학살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피해자 가족들은 군경 토벌대에 의해 죽거나 사법처리를 받았고 반공법과 국가보안법과 연좌제에 의해 감시당하면서 사회생활에 크나큰 제약을 받았다. 2003년 10월15일 발간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서는 4·3사건을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금기와 왜곡을 거듭하다가 문학적 거장들에 의해 대중들에게 비로소 알려졌다. 먼저 현기영의 단편소설 ‘순이삼촌’은 군사정부가 한창이던 1978년 발표되었는데, 학살의 아비규환에서 살아남은 순이삼촌이라는 여성의 비극적 인생을 통해 그날을 증언한 한국문학사의 돌올한 문제작이다. 순이삼촌은 뱃속의 딸을 빼고는 총격 현장에서 모든 가족을 잃는다. 아이를 낳고서 옴팡밭을 일구면서 살아가던 그녀는 그날의 끔찍한 기억과 상처를 잊으려고 서울로 향했지만 끝내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결국 이 소설은 4·3사건의 본질을 최초로 소개하고 질문한 최초의 문학사적 사건이었다. 최근 현기영 선생은 ‘제주도우다’(2023)라는 거작을 통해 4·3사건의 완결판을 선보였는데, 평생 이 사건에 주목하고 그날을 낱낱이 재현해온 거장의 말년이 아름답게 착색된 명편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재일작가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1997)다. 원고지 2만매 분량을 넘는 대작이다. 1948년 2월부터 1949년 6월까지, 빨치산 무장봉기가 완전 진압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주인공인 독립운동가 이방근은 체포되었다가 친일을 맹세하고 보석으로 출옥한다. 그는 해방 후 친일세력이 반공주의자로 변신하는 것을 보았고, 북한 공산주의에 미래를 맡길 수도 없다고 생각하여 빨치산으로 들어간다. 그는 빨치산과 토벌대가 서로 죽이는 지옥도에서 자신도 폭력성을 띠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김석범 작가는 놀라운 균형감각으로 이 비극적 역사를 재현함으로써 인간 존엄과 평화를 세계에 호소하였다. 평생 4·3사건 명예회복에 매진한 이 재일작가는 결국 이 사건의 대표적 증언자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2021)이다. 친구 인선의 요청으로 제주에 도착한 경하는 오래전 여기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그 사건이 인선 가족과 얽힌 사연과 만난다. 경하는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기억이 빛과 어둠 사이를 가르며 내리는 눈송이 속에서 그날의 상처를 되살리는 순간을 기록해간다. 한강은 ‘작가의 말’에서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썼는데 그 사랑은 마지막까지 삶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던 정심의 마음에 이미 녹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은 고요하지만 악착같은 기억의 싸움을 해가는 이들에게 ‘작별’이란 영원히 불가능함을 말해주었다. 불어로는 ‘불가능한 이별’이라고 번역되었는데, 이러한 명명이 작가의 역사 해석을 가장 선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루 알다시피 4·3사건은 다른 항쟁들에 비해 오랫동안 외면 받아왔고 소극적으로 평가되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20년 정도 터울로 쓰인 이 세 편의 소설을 통해, 거장들의 혜안과 용기와 필력을 통해, 4·3사건이 우리 근대사에서 평화와 인권의 결정(結晶)으로 우뚝함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웰컴 투 삼달리’나 ‘폭싹 속았수다’ 같은 드라마들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제주를 배경으로 하여 흥행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아름다움 아래로 어김없이 흐르는 야만의 시간을 들여다봄으로써 지금도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앞으로도 4·3사건이 여러 예술 장르를 통해, 사실적 증언을 넘어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의 서사로 이어져가기를 희원해 본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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