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 배달 특성’ 손 들어준 法

 

장례비 지급 등 거부당한 A씨 유족

근로복지公 불승인 처분 취소 ‘승소’

‘업무수행 중 수반된 위험 범위 내’

“개인 아닌 구조적 문제 지적한셈”

8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서창동에서 배달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빠른 배달을 위해 신호위반 등 법을 위반하다 사망한 배달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가운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25.4.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8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서창동에서 배달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빠른 배달을 위해 신호위반 등 법을 위반하다 사망한 배달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가운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25.4.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안전한 배달 문화가 확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대근 라이더유니온 인천지부장)

신호위반 등 법을 위반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배달 노동자들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인천 연수구 한 도로를 달리던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 A(25)씨가 좌회전 신호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직진하다 맞은편에서 오던 경차와 충돌해 사망하는 사고가 지난 2023년 9월12일 발생했다.

A씨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례비 지급을 신청했으나 거부됐다. A씨가 신호위반을 해 사고를 냈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불승인 이유였다. A씨 유족은 서울행정법원에 불승인처분 취소 처분을 냈고,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법원은 A씨가 신호위반을 했지만 이는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했다. 이 사고를 ‘근로자의 범죄행위나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사망’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또 업무 특성상 배달 지연 등으로 인한 고객 불만을 방지하기 위해 음식을 신속히 배달해야 하는 점과 사고 당일 이미 32차례 넘는 배달을 해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누적된 점 등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요인이 됐다.

고용노동부는 사고가 발생한 그해 2023년 3월 ‘법령위반으로 발생한 사고의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을 변경했다. 변경 전까지는 배달 노동자 등이 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했더라도 법령(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과속, 음주운전, 무면허 등)을 위반한 사실이 있었다면 대부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승인 처분을 해 오던 근로복지공단 측이 법원에서 패소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지침을 변경한 것이다. 기준이 변경된 후부터는 법령 위반 행위로 인한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당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업무상 재해를 판단하게 됐다.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노무사는 “재해 인정 기준이 변경되기 전에도 법원에서 법령 위반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사례가 꽤 있었다”며 “오히려 진보적인 법원의 판결을 지침이 못 따라가 뒤늦게 정부가 이를 수정했는데, 앞으로도 이런 판결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라이더유니온 인천지부는 인천에서 일하는 배달 노동자만 해도 5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며 이 같은 판결이 안전한 배달 문화 확산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대근 라이더유니온 인천지부장은 “(이번 판결은) 안전을 지키지 않는 ‘빠른 배달’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법원이 지적한 셈”이라며 “열악한 노동 환경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단을 참고해 정부와 정치권이 관련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사들은 반드시 법을 지키며 운전하고, 배달플랫폼은 안전교육 이수자 등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배달을 맡기는 등 업계의 자정 노력도 이뤄져야 안전한 배달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