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비위 맞춰 알랑댄다는 뜻 ‘아부’
부정적 의미지만 긍정 결과 효과적
최근 미일 정상회담서 그 위력 확인
‘관계 윤활유’ 역할로 지지도 받지만
리더에겐 가장 큰 비극 지점이기도

“이게 뭔가?” “생일 선물입니다, 사장님.” “지난주가 내 생일이었는데….” 늦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Better late than never). 이건 UC버클리의 제니퍼 채트먼 교수가 진행한 아부(阿附)에 관한 연구 결론이다.
남의 비위를 맞춰 알랑거린다는 부정적 뜻의 ‘아부’지만 가져올 긍정효과(?)는 경천동지! 그에 따르면 아부는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매우 효과적이란다. 아부가 지나쳐 그 효력이 상실되는 지점을 찾았으나 놀랍게도 그런 한계점은 없었다. 이는 아부가 과하더라도 역효과를 초래할 위험이 적다는 걸 일러준다.
또 ‘긍정적 정보를 전달해 상사를 기쁘게 하고, 상사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자신감까지 높여주는 사람은 더 나은 결과를 얻는다’고 아부의 효능을 짚었다.
‘1조 달러 대미 투자’, ‘금빛 사무라이 투구(兜)’. “신이 당신을 구했다.”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이시바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안긴 선물과 멘트다.
뉴욕타임스는 ‘아부의 예술로 트럼프의 환심을 샀다’고 평했다. 경제를 관세에 베팅한 트럼프의 압박을 피하고자 이시바는 아부로 구워삶았다. 이후 우리는 입이 귀에 걸린 트럼프를 보며 그 위력을 새삼 확인했다.
속된 말로 성실한 놈·똑똑한 놈·잘난 놈도 ‘아부하는 놈’을 못 따라간다더니. 경쟁력을 높이거나 아부력을 키우거나. 여기까지 읽었으니 그대도 이미 아부에 엮였다.
“내 지위를 유지하고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긍정적 감정이 강화되도록 돕는 거다.” 스탠퍼드대 제프리 페퍼 교수의 말이다.
아부로 상사의 긍정적 자아상을 높여주면 상사는 아부를 제공한 사람에게 호의(기회, 승진 등)를 베푼다는 의미. 또 그는 “상사와의 관계는 실제 업무 성과보다 더 중요하다. 상사를 기쁘게 한다면 성과는 크게 중요치 않으며, 반대로 상사를 화나게 하면 성과가 좋아도 소용없다”며 아부의 민낯을 까발렸다. 허탈하다고? 계속된다.
애리조나주립대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는 자신에 대한 평가(순수한 칭찬, 부정적 의견 또는 혼합된 피드백)를 받은 후 도움을 요청받은 상황을 조사했다. 이 연구에서 칭찬만 받은 사람은 칭찬이 필요에 따라 이뤄졌음을 인지했고, 심지어 그게 진실이 아니라고 느꼈음에도 평가자를 더 좋아했다. 즉, 머리론 빈말인 줄 알면서도 아부하는 상대에 대해 은연중 호의를 품었다. That’s life.
왜 아부는 경제적일까? ①단지 호감을 사고자 한 말이다. ②아부가 진실이라고 믿는다. 상대는 둘 중에 하나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①을 수용하면 아부를 하는 사람뿐만 아닌 자신에 대해서도 저평가를 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믿음(확신)이 옳다고 입증해주는 정보를 주로 수용(motivated reasoning)하는 탓에 ②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착잡한가?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라는 파스칼의 말처럼 우린 수시로 흔들리는 동물이다. 이런 인간에게 꿀 발린 아부가 어찌 안 통하랴. 인간이란 한자를 살피면 ‘사람(人)은 사람들 사이(間)에서만 사람!’ 관계를 떠나선 인간이 아닌 거다. 하여 ‘관계의 윤활유’인 아부가 일상에서 지지를 받게 되는 법. 공감과 소통이 중요한 작금엔 더욱 그렇다. ‘아부에 현혹되지 않는 사람은 있으나, 아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은 고금동서에 걸쳐 사실일 확률이 높다.
아부 격찬론은 여기까지만. 순자는 ‘아부꾼은 나의 도적(諂諛我者吾賊也)’이라 했고, 셰익스피어는 ‘아부는 악마의 미끼’라며 경종을 울렸다. 리더에게 가장 큰 비극은 아첨꾼(예스맨)에게 둘러싸여 있는 거다. 리더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내가 듣고픈 말이 아닌 상대가 하고픈 말을 하게 하라. 법불아귀(法不阿貴)라곤 하나 법만이 아니다. 성과보다 아부와 순응(동조)이 더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는 안 된다.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건설적 비판과 수용은 꼭 필요하다. 이런 아부는 창의력과 함께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제일 낮아 뵈는데, 그대 생각은?
/김광희 협성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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