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자 푸시 알림 보고 산 이어폰
세계 곳곳 전쟁·학살 끊이지 않고
대통령이 쿠데타 일으킨 우리나라
갈등과 혼란속 소통하며 사는 세상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싶었을까


스트레스 받을 때 소소한 소비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결국은 더 스트레스 받을 월말정산을 불러오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사람이 어리석은 일 하나쯤은 데리고 살아야 인간미가 있다는 억지 변명을 주워섬겨보는 것이다. 소비에는 심리 한계선이 작동한다. ‘손발이 닳도록 일을 하며 이만한 돈 못 쓰냐’의 이만한 돈이 내게는 오만원쯤 된다. 바지를 하나 사려다가도 가격이 오만원이 넘으면 비싸네, 하고 화면을 닫는 것이다. 하지만 꼭 사고 싶을 때는 변명을 만든다. 이 바지는 일할 때 입을 거고 그럼 이 소비는 소비가 아닌 소득을 위한 행위야. 그래도 오만원이 넘으면 부담이 되니 삼개월 무이자 할부로 사자. 대개의 심리 한계선은 오만원인가보다. 카드가 오만원부터 할부가 되니 말이다. 하지만 책을 살 때의 한계선은 더 낮다. 내게는 그게 삼만원쯤 된다. 읽고 싶은 책을 이것 저것 고르다가도 삼만원이 넘어가면 망설이게 된다. 아니 집에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산더미인데 이렇게 책을 또 사도 되나? 하는 심리적 저항에 부딪힌다. 하지만 이내 극복의 논리가 작동한다. 아니 시 쓰고 글 쓰는 사람이 책 사는 돈을 아끼면 도대체 누가 시집을 사고 책을 산단 말인가. 이 또한 더 좋은 글을 쓰고 문학하는 삶을 살기 위한 투자 아닌가 말이다.
최근에 고가의 무선 이어폰을 샀다. 줄 이어폰을 잘 쓰고 있었는데 한 달 전쯤 집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몇번이나 옷과 함께 세탁기에 들어가 고초를 겪고도 살아났던 그 이어폰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는지 끝내 자취를 감춰버렸는데 아마 지금은 입지 않는 겨울옷 안주머니에 숨어 옷장 깊은 곳에서 여름을 날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출근길에 음악을 듣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위로인지 아는 직장인이라면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아시리라. 하지만 새로 사고자 하는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 무선 이어폰은 무려 이십만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이다. 평소 같았으면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포기했을 이 이어폰을 사게 된 것은 무이자 할부 때문이었다. 한 카드회사에서 마침 언젠가 했을 마케팅 동의인지 광고 수락인지를 빌미로 푸시 알림을 보내왔는데 무려 오십개월 무이자 할부를 해준다는 소식이었다. 내 심리 한계선보다 다섯배는 비싸다고 생각했던 이어폰을 오히려 한계선의 10분의1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기회였다. 한 달에 오천원이면 담배 한 갑 안 피면 되는 돈인데(비흡연자지만) 그 정도 돈은 써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저지르고 보니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하루 종일 그 돈이면, 그 돈이면, 하면서 이십만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렸다. 살 때는 분명 오천원이었는데 사고 나니 이십만원이었다.(도박 빚 잡힌 자식이 부모에게 도박 빚 액수 줄여 말하듯 우수리를 떼어내며 액수를 줄여 쓰고 있다)
오십개월 무이자 할부를 선택한다는 것은 내가 오십개월은 노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지구는 환경파괴와 지구 온난화로 이상기후 몸살을 앓고, 세계 곳곳은 전쟁과 학살이 끊이지 않고, 내 나라는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도 감옥에 갇히지 아니하고 멀쩡히 집에 돌아가는 세상인데, 내란 직후 안가에서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과 만나 작당 모의를 하고 쓰던 휴대전화를 갑자기 바꾼 검사 출신 법제처장을 권한도 없는 국무총리가 헌법재판관에 임명하는 세상인데, 나는 회사도 잘 다니고 사고도 없고 아프지도 않고 사년이 넘도록 기간제 노동자의 노동을 이어갈 희망을 품었나보다. 카드 영수증 보다도 얄팍한 그 믿음은 소비에 길들여진 내 머리속에서 합리화된 진실로 자리잡는다.
노이즈 캔슬링은 주변의 소음을 차단해준다. 내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들려준다. 내가 통과하는 삶은 수많은 존재와 교차하며 사회의 온갖 사건과 갈등과 혼란 속에서 서로를 확인하고 인정하고 싸우고 소통하며 살아내야 할 세상이지만 나는 어느새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함께 살아가며 마땅히 지불해야 할 고민의 이자 없이 내 평안에 드는 품삯만 따박따박 분할납부하며 살고 싶어지진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이원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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