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하는 광역단체장… 잃을것 없는 국회의원
‘90일전 사퇴’ 직 상실 위험도 감수
보좌진에도 적용… 사표 내야 지원
의원, 사퇴없이 공식활동 완주가능
출발선 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지적
국회서 法 방치 의혹… 재검토 필요

조기 대선 일정이 가속화되면서 유력 정치인 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현직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뿐 아니라 그동안 숨을 고르던 원외 인사들이 나서 ‘대선 레이스’에 출전할 채비를 하고 있지만, 공직선거법에 따라 각자 다른 조건에서 싸워야 한다. 선거판이 출발선부터 다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출마자 신분에 따라 현직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큰 차이다. 공직선거법 제53조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대통령 선거 본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90일전(보궐선거는 30일)까지 사퇴하도록 규정한다. 시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이 대권 도전을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하려면 임기가 남아있어도 사직해야 한다. 낙선하면 직을 잃는다.
지방자치단체장과 달리 대선에 출마하는 국회의원에게는 사퇴 의무가 부여되지 않는다. 국회의원 직을 그만두지 않고 대선에 출마해도 된다. 선거 완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패배해도 ‘정치적 기반’을 잃지 않는다는 얘기다. 선거운동 기간 국회의원으로서 공식 활동과 언론 노출이 가능한 점은 현직 국회의원 출신 대선 후보에게만 적용된다.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한 채 대선 레이스를 이어갈 수 있다.
이는 대선 후보에게만 적용되는 조건이 아니다. 국회의원 보좌진과 지방자치단체장을 보좌하는 인력도 현직 유지 여부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공직선거법 제86조는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국회의원 자신과 그 보좌관·선임비서관 등은 이 조항의 적용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회의원 보좌진은 보좌관, 비서관, 인턴 등 9명이 지원된다. 이들도 국회사무처 소속 별정직 공무원이다. 반면 ‘○○특보’ ‘○○수석’ 등으로 불리는 지방자치단체장 보좌 인력은 공직선거법 86조 규정을 적용받는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유정복 인천시장과,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광역단체장 보좌진이 줄사표를 던져야 했던 이유다. 본인뿐 아니라 보좌진의 직도 걸어야 하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처지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대통령 선거에서 잠재적 라이벌인 지방자치단체장을 옭아매는 수단으로 공직선거법을 악용하거나 방치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온다.
1994년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공직선거법) 제정 당시 포함된 이 조항은 ‘관권 선거’를 방지하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강화할 목적으로 반영됐지만, 시대 흐름에 맞지 않아 재검토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 주장도 존재한다. 현직을 유지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 출마로 인한 ‘행정 공백’을 우려하지만, 단체장이 직을 사퇴하고 출마한 선거에서 낙선하면 보궐선거를 치르기까지의 공백이 더 길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행정·재정 비용 부담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우 인하대 명예교수는 “예를 들어 독일 등 다른 나라의 경우는 선출직이 현직을 유지한 채 다른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같은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차이가 있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 공직선거법을 다시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