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2년
미국 메사추세츠 세일럼의 마녀사냥
19명은 교수형, 1명은 고문으로 숨졌다
끝없는 의심으로 가짜가 되어가는 세상
그렇게 마을 전체를 집어삼킨 마을재판은
인간이 가진 권력이자 복수이고 욕망이었다
과거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오늘을 만든 ‘누군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무대에서 만나보자

그녀들이 춘 춤은 마치 나비의 작은 날갯짓과 같았다. 그 날갯짓은 마을 전체에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광기에 휩싸인 듯 마법과 악마와 마녀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붉게 물들였다.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의 세일럼에서는 ‘마녀재판’이 진행됐다. 언젠가 들어봤음 직한 이 사건으로 실제 19명이 교수형에 처하고 1명이 고문으로 사망했다. 종교적 극단주의, 거짓 고발, 적법하지 못한 법적 절차 등 당시 사회의 문제와 시대상을 적나라게 하게 보여주는 사건, 그리고 연극 ‘시련’에서 보여주는 그 사건의 처음과 끝은 제목 그대로 시련의 연속이었다.
극은 오랜 시간이 지난 고전을 아주 현대적이지도, 그렇다고 아주 고전적이지도 않게 보여줬다. 이렇다 할 화려한 장치도, 무대 배경도 깔끔하게 지웠다. 다소 애매한 지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단조로운 무대가 시대적 배경과 이질적이면서도 도드라졌던 이유는 상징성에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흰 무대는 인물들이 가지는 감정과 행동, 대사에 집중하게 함과 동시에 그들이 가진 위선과 거짓, 악함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따금식 배경에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마치 낙인이 찍힌 것처럼 선명하게 사라졌다. 무대가 전환될 때마다 강렬하게 나타나는 붉은 조명과 짙은 연기는 마을에 덮친 끔찍한 비밀처럼 또는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악의 기운처럼 퍼지는 듯 했다.
‘마녀를 색출하는 신의 도구’로 선택된 그녀들의 연기는 마을에서 사람들을 사라지게 하고, 가축이 거리를 돌아다니게 하며, 땅을 황폐화 시켰고, 아이들을 고아로 만들었다. 그렇게 거짓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진실이라 불리는 것들은 인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지옥임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 지켜보는 이를 더욱 절망적이게 했다.
서로를 향한 끝없는 의심 속 가짜가 되어가는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과연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믿을까’라는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마녀재판이 마을 전체를 집어삼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가진 권력이자 복수이고 욕망이었다.

그래서일까. 각각의 인물이 진실을 말하기 위해 모인 재판장은 그야말로 숨 막히는 공간이었다. 특히 이 사건으로 고발된 존 프락터의 부인 엘리자베스가 과연 재판장에서 거짓말을 할 것인지, 진실을 말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그 찰나가 몰입도를 한껏 높였다.
정적의 순간은 되려 폭발적으로 느껴졌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생겨난 객석의 고요한 집중력이 끌어 올려지는던 그때, 무대 위의 인물들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각자의 고통과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
감옥은 시리도록 추웠다. 부인을 지키려다 감옥에 갇힌 존의 몸에 난 고문의 상처와 묶인 쇠사슬의 소리가 강렬하게 꽂혔다. 사실 이 극을 보는 내내 존과 함께 끊임없이 갈등했다. 거짓자백을 하고 죽음을 면할 것인지, 진실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또 선과 악의 모습은 무엇이며, 어떤 것이 맞고 틀렸는지를 말이다. 과연 나라면 세일럼의 감옥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죄 없는 형벌 앞에 겸허해 지기도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극의 흐름을 쭉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에 좋은 세상이 되었다. 누군가가 하는 말을 쉽게 믿을 수도, 금세 퍼지는 다수의 이야기에 휩쓸려 가기도 쉬워졌다. 마치 세일럼 같이.
그러나 그 안에서도 진실을 택한 죄로 사형대에 오른 레베카 너스와 존 프락터처럼, 또 바른 말을 하다 무거운 돌에 짓눌려 죽어간 자일즈 코리처럼 휩쓸리지 않는 양심으로 바로 선 이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그들은 또 다른 이름의 누군가로 존재해 왔고, 과거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오늘을 만들었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은 시련과 마주하기 마련이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선함을 가지는 것도, 그 선함을 잃어버린 것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도, 옳은 신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켜내는 것도 어쩌면 이토록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결과물이지 않을까.
연극 ‘시련’은 4월 27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계속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