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항상 신문 읽으셨던 선친
신문이 없었다면 민주화도 지체
스마트폰 보급으로 이제 ‘레거시’
그렇지만 세월 견뎌낸 연륜·경험
고군분투하는 언론인들에 경의

신문은 항상 있었다. 글을 알고 난 후, 매일 신문을 봤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선친(先親)께서는 항상 신문을 읽으셨다. 소리 내어 읽기도 하시고, 감탄사를 내뱉거나 혀를 차기도 하셨다. 일상에서 신문‘지(紙)’는 유용했다. 정육점에서 고기 포장지로, 조각난 신문지가 화장실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소년신문을 읽었다. 주요 일간지들의 자매지였다. 친구들이 돌려보기도 했다. 소년지(少年紙)가 미래 독자 확보를 위한 마케팅 전략임은 세월이 흐른 뒤 알았다.
중학교에는 신문배달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등교하면 전날 신문을 담임선생님께 드렸다. 석간(夕刊)의 존재도 처음 알았다. 중학생은 신문을 통해 어려운 한자를 익혔다. 봉황(鳳凰), 대붕(大鵬), 청룡(靑龍)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고교야구대회의 우승기(優勝旗)로 존재한다. 이 어려운 한자들은 지금도 제대로 쓰기 어렵다. 그렇지만 읽을 수 있다. 이미 중학생 때 알았다. 야구대회가 신문사 수익사업인 것은 나중에 깨달았다. 1980년대에 대학생이 되었다. 학교에는 경찰이 상주했고 시위가 빈번했다. 신문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어쩌다 단신(短信)으로 처리했다. 야당지도자의 단식투쟁도 시간이 흐른 뒤 짧게 보도되었다. 가판대에서는 그 짧은 기사를 붉은색으로 테두리하여 전시했다. ‘거리의 편집자’가 등장한 셈이다. 후에 ‘보도지침’을 통해 뉴스를 검열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박종철 고문치사,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후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본격 표출되기 시작했다. 어용언론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신문이 없었다면 민주화는 상당히 지체되었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정기간행물법이 개정되었다. 국민주(國民株) 신문, 종교자본의 신문, 재벌신문도 등장했다. 경제성장으로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광고수요도 증가했다. 국민 취향도 다양해졌다. 영어공부를 위해 영자신문을 구독했다. 오가는 전철에서 스포츠 신문을 읽었고 주식에 관심을 가질 때는 경제지도 함께 봤다. 1990년대는 신문의 전성시대였다.
전성기는 곧 쇠퇴의 시작이다. 민간상업방송이 추가되고 케이블TV도 도입되었다. 인터넷도 일반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신문은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자’며 인터넷 보급 캠페인에 동참했다. 인터넷이 보급될수록 신문의 위상이 추락된다는 것을 당시 신문경영자들은 몰랐을까. 인터넷은 세상을 바꾸었다. 미디어도 예외가 아니다. 신문, 방송의 뉴스 독과점시대는 끝이 났다. 누구나 뉴스를 제작하고 배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모든 세대에서 인터넷 사용이 가능해졌다. 스마트폰은 전국민에게 모바일 컴퓨터를 한 대씩 보급한 셈이다. 이로써 신문과 방송은 ‘레거시’ 미디어가 되었다. 레거시(유산)라는 말 자체가 신문과 방송이 시대의 소임을 다했음을 상징하고 있다.
주위에서 신문 읽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전철에서는 모두 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편의점에서도 신문을 판매하지 않는다. 심지어 미디어전공 교수도 신문을 정기구독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뉴스는 본다. 미디어 이용형태가 달라진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의 앱으로, 새로 등장한 뉴스 조직을 통해서, 또는 개인 유튜버의 뉴스를 보고 있다. 오래된 미디어가 반드시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세월을 견뎌낸 미디어에는 연륜과 경험이 녹아 있다. 그들을 기득권자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축적의 시간은 전문성을 키웠고 독자의 신뢰를 쌓았다.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지난 4월7일은 신문의 날이었다. 1896년 4월7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다. 신문협회는 해마다 신문의 날 기념 표어를 공모한다. 올해는 ‘신문이 내 손에, 세상이 내 눈에’가 선정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글자를 알면서부터 신문이 내 손에 있었다. 신문을 통해 세상을 보았다. 신문은 나에게 세상을 연결해주는 고마운 창(窓)이다. 이제 신문은 사양산업이 되었다고 한다. 신문이 사라지지 않을까 두렵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언론사와 언론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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