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파면으로 막내린 정치활극

국민이 승리한다는 진리 다시 확인

65년전 학생중심으로 독재에 항거

발화지인 인천기계공고엔 ‘기념탑’

권력 놀음, 가만두지 않음 명심을

이두 前 조선일보 인천취재본부장
이두 前 조선일보 인천취재본부장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정치 활극’이 끝났다. 한밤중 기습적인 비상계엄으로 시작해 줄탄핵과 수많은 국민을 광장으로 불러낸 넉 달간의 정치 활극은 대통령 파면으로 막을 내렸다.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각자의 마음속에 남았으리라.

계엄 해제와 끝없는 탄핵,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구속과 석방, 공수처의 우왕좌왕, 법원 난입, 법원과 헌법재판소 불신, 여야 정치인들의 끝없는 막말 잔치와 그 와중에 끼어든 국제 정세의 파고는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어떤 액션이나 정치·역사·첩보·스릴러물도 이보다 더 다이내믹하고 짜릿하지는 못하리라. 대한민국 현대사에 커다란 획을 그으며 펼쳐진 정치 활극은 한결같이 밉상이면서 분노를 유발시키는 수많은 정치인을 주연으로 등장시켰다. 그러나 결국 국민이 주인공이요 국민이 승리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처음에는 단역이었다가 마침내 영화의 한가운데 우뚝 선 대한민국 국민은 실로 위대하다. 몇 달간 심하게 요동쳤던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평화롭고 성숙한 자세로 지켜내고 있다. 대통령 탄핵에 강력히 반대했던 보수 진영의 국민들도 ‘대통령 파면’ 결정에 승복하는 민주시민의 자세를 보였다. 5천만 국민을 불안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린 주범들은 다름 아닌 아집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국민을 분열시켰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결국 나라를 사랑하고 분노한 국민들이 나서서 이를 해결했다.

65년 전인 1960년에도 그랬다. 우리 국민은 영구 집권을 꿈꾸는 일당 독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 씨앗을 뿌렸다. 1960년 4월19일 이승만 독재에 항거해 전국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돼 시위를 일으켰다. 인천에서는 인천기계공고 학생들이 가장 먼저 시위에 앞장섰다. 학생 300여 명이 수업을 거부하고 “이승만 퇴진”을 외치며 교문을 박차고 나가 가두시위에 나섰다. 수봉공원 거리를 지나 제물포역 인근까지 진출했다. 경찰과 맞닥뜨려 투석전을 벌였다. 그해 4월26일까지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으며 마침내 ‘이승만 하야’를 이끌어냈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1년 후인 1961년 4·19혁명 기념식이 도원동 숭의운동장에서 열렸다. 그해 6월12일 4·19 시위의 발화지였던 인천기계공고 교정에 ‘4·19학생의거기념탑’이 세워졌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학생들의 숭고한 정신을 잊지 말자는 뜻이었다. 인천기계공고의 4·19학생의거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천의 대학교와 어느 고등학교에서도 실천하지 못한 독재에 대한 항거를 인천에서는 최초로 행동으로 보여줬다. 4·19의거는 이 땅에 민주주의의 싹을 틔운 국민적 혁명이었다.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의 계승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수록돼 있다. 자라나는 초중고생들에게 4·19의 숭고한 정신을 전하기 위해 교과서에도 실렸다.

2023년 4·19 정신을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인천기계공고 4·19혁명기념사업회’가 탄생했다. 백발이 성성해졌지만 당시 시위에 직접 참여했던 주역 20여 명이 중심이 됐다. 매년 기념식 개최, 명사 초청 강연 및 세미나, 모교 교정에 건립된 기념탑 보존 관리, 유공자 선발 포상 등의 사업을 해오고 있다. 오는 18일 인천기계공고 교정에서 4·19 혁명 65주년 기념식이 거행된다. 당시 시위 참가자들을 비롯해 인천시장, 인천시의회 의장, 인천시교육감, 인천보훈지청장 등 각계 인사와 재학생들이 참석해 그날을 기념하고 숭고한 정신을 되새긴다. 기념탑에 추모 헌화하고 유공자 14명을 선발해 포상한다.

국민들이 독재 정권을 물리친 지 올해로 65년이 됐다. 지난 몇 달간 이 땅에는 ‘계엄 독재’ ‘검찰 독재’ ‘사법 독재’ ‘민주 독재’ ‘입법 독재’ 등 여러 형태의 독재 망령들이 떠돌며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했다. 권력 놀음에 취하면 국민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4·19의 역사적 교훈을 정치인들은 늘 명심해야 한다.

/이두 前 조선일보 인천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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