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12·3 비상계엄 사태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까지 관련 집회에서 사용된 각종 물품들을 역사적 자료로 판단해 수집했다고 한다. 손팻말, 스티커, 신문기사 등 집회에서 으레 볼 수 있는 물건들인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케이-팝 문화에서 소환된 ‘응원봉’이다. 오래전부터 이 응원봉은 ‘굿즈’(goods)라 불렸다. 윤석열 탄핵 선고 소식을 발행한 ‘호외 신문’도 원래 값어치의 몇 배 가격으로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거래되고 있다. 탄핵을 선고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경남지역 독지가 김장하 선생의 장학생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가 김장하 선생의 삶을 취재해 쓴 책 ‘줬으면 그만이지’(2023·피플파워)의 판매량이 20배 이상 급증하며 베스트셀러 차트를 ‘역주행’하고 있다. 굿즈의 시대, 그렇게 시민들은 저마다의 ‘탄핵 굿즈’를 찾아 품고 있다.
‘나만의 탄핵 굿즈’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인천에서 새얼문화재단이 지난 3월1일 발행한 계간지 ‘황해문화’ 2025년 봄호(통권 126호)로 골라잡았다. 황해문화 2025년 봄호 표지가 어두운 밤 각양각색의 빛나는 응원봉 물결로 아름답게 뒤덮인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 표지는 윤움 작가가 지난 1월 그린 일러스트를 사용했다.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모토로 32년 동안 126권을 발행한 황해문화는 다양한 시대 담론을 다루되, 수록되는 글마다 논문 수준의 내용과 분량으로 ‘읽기 훈련’이 제대로 안 된 독자에겐 난이도가 무척 높은 잡지다. 126권을 이어오는 동안 표지에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권위지’마저 응원봉 물결에 연대의 자리를 내어 줄 수밖에 없는 일대 역사적 사건이 12·3 비상계엄이다. 이번 호는 기존 편집 틀마저 깨버리고 시민 51명의 목소리(응원봉)를 동일 선상에서 실었다. ‘한정판’ 탄핵 굿즈를 만들어 준 편집진의 용기와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박경호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