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의 당위성 정치·시민사회 모두 공감

입법부 권한행사·재의요구 충돌 일상화

대선이후 개헌 일정표 제시 반드시 필요

후보들 공동합의문 발표만해도 큰 수확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

대통령 선거때마다 1987 체제의 종식이 대선 공약으로 등장하곤 했지만 정작 성과는 없었다. 권력구조는 물론 어떠한 헌법 조항에 대해서도 합의되지 않았고, 정치적 수사 차원에 그쳤다. 탄핵정국에서 개헌 이슈가 제기되었지만 어차피 대통령의 탄핵이 마무리되지 않은 국면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제7공화국으로의 전환은 동력을 받을 수 없었다. 개헌이 성사되려면 우선 국민의 합의가 있어야 하고, 정당 간 공감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권력구조에 있어 분명한 합일점을 찾아내지 않으면 개헌 논의는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것도 임기 말에 국면 전환을 위한 시도라는 비판 때문에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개헌이 정파적이고 정파적 이해관계의 다툼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기 초에는 여야 모두 개헌에 관심이 없다가 임기 말에 집권측에서 국면을 만회하려고 정략적으로 꺼내드는 개헌 이슈가 동력을 받을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개헌의 당위성에는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모두 공감한다. 탄핵 정국에서도 차제에 구조적인 한국정치의 모순을 타개하기 위해 권력구조의 변화와 대통령 권한 분산 등을 모색하자는 여러 제안이 있었으나 대선 때까지 개헌 논의는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나 초단기의 대선 레이스에도 불구하고 개헌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 대선 후보와 정당 차원에서 대선 이후의 일정표를 제시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어떤 권력형태를 선호하고 교집합을 도출할 수 있을지도 난관이다. 대선 기간 중 개헌 이슈 자체가 사장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4년 중임제와 내각제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의 문제를 우선 결정해야 한다. 당장 목도하는 문제점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충돌시 이를 완충할 견제장치의 부재다. 입법부에 여당과 야당이 존재하지만 다수 의석을 압도적으로 보유하는 정당이 야당인 경우에, 여당은 사실상 야당의 입법과 탄핵 등의 정치 공세에 무력할 수밖에 없고, 이를 막는 수단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이다. 야당의 입법, 탄핵 등 주어진 권한 내에서의 입법부의 권한행사와 대통령의 거부권이 충돌하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정치의 양극화는 물론 극단적 대결 구도가 만성화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정치구조다. 분점정부(여소야대) 정국에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내각제는 의회가 내각을 구성하기 때문에 이러한 충돌을 방지할 수 있지만 의회와 행정부가 내각 불신임과 의회 해산으로 맞선다면 정국 불안은 피할 수 없다. 이원집정부제가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지만 국회 선출 총리와 국민의 직접 선출에 의한 대통령 모두 민주적 정당성을 보유하는 상황에서 두 기관이 대립할 때의 문제점 또한 만만치 않다. 이는 서구의 여러 경우에서 경험칙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이러한 점 등을 고려해서 나온 대안이 국회에서 선출하거나 추천하는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지금의 국무총리와는 전혀 다른 총리제인 셈이다. 대통령과 총리의 권력 분산의 정신을 담을 수 있으나 이는 사실상의 이원집정부제와 다름없는 구조이다. 그렇다고 현행에서 사실상 무력한 총리제를 잔존시킨 채 4년 중임제 대통령제로 바꾸는 것은 의미가 없다. 4년 중임이 임기 말 레임덕을 막고 ‘식물대통령’을 막기 위한 방안이라고 하지만 임기 말은 어차피 오는 것이고 이 때 역시 레임덕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이 현행 대통령제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 후 차기 대통령이 임기 5년을 마치고 2030년에 대선과 지방선거의 주기를 맞추는 안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 동안 지금의 대결 구도를 그대로 안고 갈 수밖에 없다면 이는 좋은 방안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짧은 대선 기간 동안 권력구조의 변화를 전제로 정당 간 합의를 보긴 어렵다. 그러한 정국구도도 아니다. 이러한 제 문제를 감안하여 정당 후보들이 최소한 어떠한 권력구조를 선택할 것인지 합의를 보고 향후 개헌 일정을 국민 앞에 후보들 공동합의문으로 발표하는 것까지만 가더라도 큰 수확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