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국종은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을 해피엔딩으로 종결한 주인공으로 대중 앞에 등장한 이후 지금껏 한국 의료계에서 안티히어로의 길을 걸어왔다. 석해균 선장을 살린 무명의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는 빈곤한 한국 중증외상 의료실태를 보여준 역설적 증거였다. 대중의 열광적 지지로 영향력이 막강해진 이국종은 아예 중증외상분야의 전도사가 됐다. 공염불에 그친 정부의 중증외상센터 건립 약속을 다그쳐 이국종법 제정으로 전국에 권역외상센터가 설치됐다. 닥터헬기 도입을 위해 여론에 호소하고 국회에 읍소했다. 닥터헬기 소음 민원을 해결하려 도지사와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비주류의 영향력은 늘 주류의 권력과 충돌했다. 이국종이 6개만 집중 육성하자던 권역외상센터는 정치권의 정략으로 전국 시도에 쪼개져 설치됐다. 인력은 부족했고 예산은 흩어져 기능부전에 빠진 센터들이 속출했다. 그래도 2017년 판문점에서 총상을 입고 귀순한 북한병사 오청성을 살려내 의사의 본분을 다했다. 2019년 아주대병원에 배정된 닥터헬기엔 격무로 사망한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콜 사인 ‘아틀라스(Atlas)’를 새기고 응급의료체계 완성 의지를 다졌다.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지난 14일 강연에서 후배 군의관들에게 한국 의료정책과 현장을 향해 독설을 쏟아부었다. “조선반도는 입만 터는 문과 놈들이 해먹는 나라다. 이게 조선반도의 DNA”라며 “서울대, 세브란스 노의(老醫)들과 공무원들에게 괴롭힘당하며 살기 싫으면 바이탈(필수의료)과 하지 마라”는 발언에선 정치권과 정부, 의료계 주류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가득하다. “한평생 외상외과에서 X빠지게 일했는데 바뀌는 건 하나도 없더라”며 “내 인생은 망했다”고 했다. 과로사한 윤한덕 교수를 거론하며 “너희는 저렇게 되지 말라”고도 했다.

이국종 원장은 후배 군의관들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탈조선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엔 “북 도발 시 서해5도에 들어가 섬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닥터헬기 탑승을 위해 레펠 훈련까지 한 이국종은 실제로 그럴 사람이다. 이국종의 독설은 자신과 고 윤 교수처럼 망하고 죽을 각오 아니면 외상외과에 발디딜 생각 말라는 호소 같다. 외상외과에 투신하면 마주할 냉혹한 현실에 대응할 신념의 백신을 독설에 담았지 싶다. 후배 의사들이 이국종의 독설로 의사의 소명을 깨닫는 역설에 이르기 바란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