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절망·우울 등 참작 사유로
범행 사전계획에도 적은 형량 받아
“가족 살해는 가중처벌 사유돼야”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건이 이어지는 배경에는 한국 사법체계가 ‘가장의 살인’ 행위에 너그러운 경향을 보인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피의자가 가족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처벌불원이나 극단적 판단을 할 정도로 가정의 형편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심리 상태 판단이 양형에 지나치게 중요한 요소로 고려된다는 것이다.
16일 법원에 따르면 가족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건 피의자에 대해 징역 8년 이하의 약한 처벌이 내려졌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사업 실패를 비관해 자녀 1명을 살해하고 나머지 자녀 2명을 살해하려 한 부부에게 지난 2019년 각각 징역 5년과 3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수면제를 사전에 처방받아 자녀들에게 먹인 뒤 함께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수면제 처방은 살해행위를 준비했다는 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긴 잘못된 인식이며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고 질타했지만 “경제적 절망감과 우울감, 깊은 반성, 자발적 119 신고 등의 정황을 고려한다”며 감형 사유를 판시했다.
피고인들의 법정 형량 범위는 징역 2년 6개월~30년이었으나, 모두 이중 낮은 수준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았다.
의정부지방법원은 한부모 여성 가장이 채무 변제 등 경제적 이유로 자녀 한 명을 살해하고 나머지 한 명은 살인 미수에 그친 사건에 대해 지난 2016년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고, 자수와 반성,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가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서 가장의 경제적 상황과 심리 상태가 반복적으로 참작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용인시에서 50대 A씨가 부모·배우자·자녀 등 가족 5명을 살해한 사건 역시 앞선 판례들과 유사한 구조를 띠고 있어 향후 사법 판단에 이목이 쏠린다.
특히 A씨 범행에서도 계획성이 엿보인다는 점은 향후 수사·기소·재판 과정에서 주요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이다.
신민영 형법전문 변호사는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사건은 오히려 가중 처벌을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며 “만약 수면제를 먹인 뒤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살해했다면,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공격당한 것과 다름없다. 가장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범죄를 감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참작하는 분위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