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짜리 지폐가 태어난 지 50년 됐다. 가치가 가장 떨어지는 막내 지폐지만, 1975년 당시에는 ‘그깟 천원’이 아니었다. 버스(30원)를 타고 극장에 가서 영화(500원)를 본 뒤 짜장면(150원)을 먹어도 320원이 주머니에 남았다. 택시 기본요금이 200원, 지하철 1호선 기본요금은 30원이었다. 천원으로 라면 10개를 살 수 있던 시절이다. 50년이 지난 2025년은 천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만원으로도 밥 한 끼 사먹기 빠듯하다. 냉면 한 그릇이 만원을 훌쩍 넘은 지 오래고, 짜장면도 8천원이다. 편의점을 가도 천원으로는 간단한 식사를 해결하기 힘들다.

팍팍한 세상, ‘천원의 행복’은 따뜻한 정이자 위로다.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해뜨는 식당’은 천원 백반집으로 유명하다. 지난 15일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이 손편지를 전한 곳이다. 직접 방문하지 못했지만 인근 가게 선결제로 식재료를 후원했다. 해뜨는 식당은 15년째 밥과 국, 반찬 3가지가 단돈 1천원이다. “1천원은 말하자면 떳떳하라고, 부끄럽지 않으라고 내는 돈이야.” 어머니 고(故) 김선자 할머니의 유지를 막내딸 윤경 씨가 이어가고 있다.

대학 캠퍼스에서는 ‘천원 학식’이 인기다. 대학생들은 단잠 대신 ‘천원의 아침밥’ 오픈런에 기꺼이 동참한다. 올해 경기 33곳, 인천 11곳 등 전국 200개 캠퍼스에서 아침밥을 준다. 농식품부가 학생 1인당 2천원, 지자체와 학교가 나머지를 부담한다. 인천대에서는 시험 기간 동안 ‘천원의 저녁밥’도 먹을 수 있다. 늦은 시간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학생들의 건강을 챙긴다. 18일 오늘의 메뉴는 소고기야채죽, 동치미, 야채춘권, 두부조림, 오징어젓무말랭이무침, 배추김치다. 선착순 250명이니 서두르시라.

‘천원의 행복’ 릴레이는 ‘천원 매점’으로 이어진다. 경기도는 ‘천원의 아침밥’에서 힌트를 얻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도사회복지협의회 푸드뱅크에 물품을 기부하면, 대학 매점에서 최대 90% 싸게 판매한다. 대학은 공간을 제공하고 총학생회 등이 운영을 맡게 된다. 6월에 문 열 ‘천원 매점’도 나눔의 힘을 발휘할 게다.

경제 침체의 골은 갈수록 깊어진다. 여기저기 곡소리다. ‘IMF나 코로나 때보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얘기가 예사로 들린다. 천원 시대로의 회귀가 반갑지만은 않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