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쪽방촌

고단함보단 따뜻함이 기억에 남아

구분하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살아

따뜻하고 정감있게 자라는 아이들

다정한 온기, 삭막한 시대의 유산

최정화 소설가
최정화 소설가

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쪽방촌에 다녀왔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 햇볕 한 조각 들지 않고, 여전히 연탄을 때고, 집 앞에 장독대를 두고 김치를 담가 보관하는. 누군가 장독대 뚜껑을 받쳐둔 벽돌을 자주 훔쳐간 모양인지, 한 번만 더 훔쳐 가면 된통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경고가 적힌 종이쪽지도 보았다. 반쯤 부수어져 나간 집을 그대로 두고 있어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고단함보다 따뜻함이 더 기억에 남은 이유는 입구에 놓아둔 널따란 평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입구에 들어서자, 평상에 앉아 이웃과 수다를 나누시던 주민분이 환한 얼굴로 방문객을 맞아주셨다. 나는 조금 얼떨떨해지고 말았는데, 누군가의 생활터전을 불쑥 찾아간다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 때문에 잔뜩 경직되어 있었던 탓이었다.

요즘 우리들의 동네들은 방문객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입구를 엄격하게 단속하고, 거주민이 아니면 들이지 않는다. 배달 노동자들의 출입구를 따로 지정할 정도다. 그런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일상을 꾸리는 생활터전을 공개한다는 건 불편하기 마련이어서 걱정했는데, 내 가난한 예상은 가볍게 빗나갔다. 마을 주민분에게서 가난하고 누추한 살림살이를 부끄러워하는 기색이나 사적인 영역을 침해당한 불쾌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이 찾아오니 그저 반갑다는 태도였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자주 긴장하고, 대화를 나눌 때는 끊임없이 시시비비를 가리려 들고, 상대방이 선을 넘어온다 싶으면 밀쳐내느라 바쁜 내 마음이 순식간에 창피해졌다. 가난한 쪽방은 괭이부리마을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 속에 있었다.

괭이부리마을 아이들이 따뜻하고 정감 있는 사람으로 자라는 이유는 꿋꿋하게 가난을 극복하려는 의지 때문이 아니라 구분하고 나누지 않으며 서로 다닥다닥 붙어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옹기종기 자연스럽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각박하고 조심스러운 내 마음 또한 내가 사는 도시의 환경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혼자 일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쉬는, 일인용 일상에 길들여진 탓일 테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으며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소설가가 된 성인의 나는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와 노동자의 길을 걸으며, 난장이는 난장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재벌총수야말로 진짜 난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등장인물 중 가장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 가장 키 작은 마음을 가진 자였다. 자기가 난장이인줄도 모르는 진짜 난장이를 두고 단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부러워하면서, 우리는 우리들 마음의 키를 스스로 낮추고 있는 건 아닐까?

소설 속 목재가공공장이 있던 곳에는 이제 고층아파트가 솟아올라 있었다. 아파트 앞에 서서 시민들과 함께 소설 속 구절들을 소리 내어 읽었다. 사람을 병들게 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소설 속의 공장들은 이제 인천의 만석동보다 더 구석진 곳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먼 곳으로, 더 지방으로, 아예 제 3세계로 보내졌을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게 아니라, 안 좋은 것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 길을 걸으며 깨달았다.

쪽방촌에 다녀오면 마음이 불편할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마음이 누그러지고 한없이 편안했다. 지나치게 깔끔하고 세련된 도시의 건물에서는 나도 모르게 자꾸만 스스로를 강박적으로 들볶았는데, 못 나도 상관없고 못 살아도 괜찮은 괭이부리마을에 다녀오니 못생긴 내 마음을 그대로 그냥 두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옹기종기 붙어사는 괭이부리마을의 다정한 온기야말로, 세련되었지만 삭막한 우리 시대의 소중한 유산이고 보물이었다.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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