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 인권 공적 테이블 첫 사례

많은 이들 일터… “퇴거 정책 답 아냐”

파주시민·뉴욕 활동가 등 국내외 연대

“파주시는 우리의 집을 망치로, 쇠파이프로, 포크레인으로, 법과 공권력의 이름으로 부쉈습니다.”

‘불법’이라는 이름 아래 법과 제도의 바깥에 머물렀던 파주 용주골 성노동자 여성들이 마침내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18일은 그간 혐오와 배제 속에 외면돼 왔던 성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처음으로 공적 절차를 통해 제기된 날이다.

이들이 제출한 진정서는 한 가지 물음을 던진다. ‘왜 공공의 명분 아래 가장 약한 이들에게는 협의도 없이 퇴거와 철거가 이뤄지는가’. 진정서는 행정의 언어가 외면한 이들의 문장이자, 제도 바깥에서 오랫동안 눌려 있던 침묵을 뒤늦게 꺼낸 ‘늦은 탄원서’였다.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용주골 성노동자 인권 침해 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국내외 시민들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2025.4.18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용주골 성노동자 인권 침해 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국내외 시민들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2025.4.18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이날 현장에는 파주시에서 온 시민을 비롯해 미국 뉴욕에서 연대차 방문한 활동가까지 모여 용주골 성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주거권 보장을 국가기관에 촉구했다. 이제 이들의 외침은 국가인권위의 논의 테이블 위에 본격적으로 올랐다.

“우리도 시민이다”… 국가인권위 앞 외침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포크레인을 멈춰라!’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성노동자들과 연대 시민들은 강제 철거 중단과 인권 보호를 촉구하며 인권위에 공식 진정을 제기했다. 2025.4.18 /김도윤기자 lkjkdy02@kyeongin.com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포크레인을 멈춰라!’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성노동자들과 연대 시민들은 강제 철거 중단과 인권 보호를 촉구하며 인권위에 공식 진정을 제기했다. 2025.4.18 /김도윤기자 lkjkdy02@kyeongin.com

이날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 ‘용주골 여종사자모임 자작나무회’와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를 비롯해 연대에 나선 시민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지자체의 강제 철거로 인해 주거권과 인격권이 침해당했다며 국가기관에 진정을 넣었다.

이날 현장 발언에 나선 용주골 성노동자 A씨는 “저희는 집을 잃고 쫓겨나고, 다시 어디론가 이사를 가야한다. 이 작은 동네에서 여성들은 국가로부터 버림당하고, 무시당하고,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다”며 “더이상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더 위험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국가인권위가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줬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용주골 성노동자 인권 침해 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국내외 시민들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2025.4.18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용주골 성노동자 인권 침해 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국내외 시민들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2025.4.18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뒤이어 나선 용주골 성노동자 연대 시민모임의 홍지연(20대)씨는 “수십 년간 국가와 지자체는 이곳을 사실상 방치해왔고 이제와서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폐쇄를 추진하고 있다”며 “중요한 사실은 용주골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 일터가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다는 윤일희(50대)씨도 “이 문제는 단지 집결지를 없애는 걸로 해결될 수 없다. 왜 성매매 여성의 인권만은 누구도 말하지 않는지, 왜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철거만 반복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엔여성기구(UN Women)의 답신을 언급하며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외치던 너무도 당연한 말들이 조금이나마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뉴욕과 닮은 한국… 성노동자 강제 퇴거 패턴은 같다”

미국의 인권단체 ‘레드 카나리 송(Red Canary Song)’ 로고. 이 단체는 뉴욕을 중심으로 아시아계 및 이주 여성 마사지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등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인권단체 ‘레드 카나리 송(Red Canary Song)’ 로고. 이 단체는 뉴욕을 중심으로 아시아계 및 이주 여성 마사지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등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미국 뉴욕에서 온 인권활동가 윤(Yoon·32)씨도 참여해 한국과 미국의 현실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포인 그는 뉴욕 퀸즈·뉴저지 지역에서 아시아계 이주여성들과 연대해왔다. 현지에서는 아시아계 및 이주 마사지 업소 종사자들의 권익 보호와 조직화를 지원하는 풀뿌리 연합체 ‘레드카나리송’(Red Canary Song)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씨는 “미국에서도 여성의 안전을 핑계 삼아 단속과 추방이 이뤄지고 있다. 단속을 피하다 다치거나 체포되는 일도 빈번하며, 이 과정에서 여성들의 생계는 무너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용주골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뉴욕에서도 불법 건물 철거, 허가 미비, 도덕적 이유 등을 명분으로 삼아 성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몬다. ‘아이들이 보고 있다. 아이들 교육에 안 좋다’는 식의 압박이 이어진다. 정책적 명분은 달라도 구조는 동일하다”고 말했다.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용주골 성노동자 인권 침해 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국내외 시민들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2025.4.18 /김도윤기자 lkjkdy02@kyeongin.com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용주골 성노동자 인권 침해 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국내외 시민들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2025.4.18 /김도윤기자 lkjkdy02@kyeongin.com

특히 윤씨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건 여성들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아 이윤을 창출하려는 신자유주의적 개발 논리 때문”이라며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부는 여성을 보호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씨는 “유엔이 한국 성노동자들의 입장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만으로도 국제적으로 의미 있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하며 “이 자리에 서 있는 여성들의 외침은 뉴욕에서 들은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국내외 연대, 제도 밖 외침을 국가기관으로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용주골 성노동자 인권 침해 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국내외 시민들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2025.4.18 /김도윤기자 lkjkdy02@kyeongin.com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용주골 성노동자 인권 침해 진정’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국내외 시민들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2025.4.18 /김도윤기자 lkjkdy02@kyeongin.com

이번 진정은 단순한 제도 개선 요구를 넘어, 법과 제도의 바깥에 머물러야 했던 성노동자들이 ‘보편적 인권의 언어’로 국가기관에 문제를 제기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법원이 아닌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린 이들의 선택은 소외와 침묵 속에 놓여 있던 현실을 공적 테이블 위로 끌어올리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은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로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유엔여성기구는 본보 질의에 대한 답신에서 “성노동자와의 협의 없이 진행되는 정책은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책은 반드시 당사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국내에서는 1천4명의 시민과 43개 단체가 성노동자 인권을 지지하는 연대 서명에 참여했고, 싱가포르의 성노동자 인권단체 ‘Project X’ 또한 “강제 퇴거는 공동체 해체와 성산업의 지하화를 초래하며 성노동자를 더 위험한 조건으로 내몬다”고 우려를 전해왔다.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이 ‘진정서’ 봉투와 손팻말을 들고 강제 철거에 대한 항의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이들은 주거권·생존권 침해를 이유로 국가인권위에 공식 진정을 접수했다. 2025.4.18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이 ‘진정서’ 봉투와 손팻말을 들고 강제 철거에 대한 항의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이들은 주거권·생존권 침해를 이유로 국가인권위에 공식 진정을 접수했다. 2025.4.18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기자회견이 끝난 뒤 자작나무회와 주홍빛연대 차차는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공식 접수했다. 여름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성노동자도 주거권과 생존권을 가진 시민입니다. 성매매 업소 건물주에게는 수억원을 보상하면서 그 건물에 살던 여성에게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쫓는 정책이 어떻게 공공의 이름을 가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단지 법의 보호를 받고 싶다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매매피해자 인권 침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관련 파주시 입장문

한편, 이날 국가인권위 제소와 관련해 파주시도 입장을 밝혔다. 아래는 입장문 전문.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에 소재한 성매매집결지 내 자칭 ‘여종사자모임 자작나무회’는 파주시가 당사자와 협의 없이 강제 철거를 추진해 생존권과 주거권을 위협하는 인권 침해를 야기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파주시는 정당한 행정 집행을 ‘강제 철거’라 폄훼하며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인 성매매 행위를 정당화하는 자작나무회 측의 주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성매매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른 명백한 불법 행위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지난 2023년 발간한 ‘인권보도 참고 사례집’에서 성매매 여성을 ‘성매매종사자’나 ‘여종업원’이라 지칭하는 것은 성매매가 마치 합법적 직업인 것처럼 간주될 위험이 있으므로 ‘성매매피해자’ 등으로 표현할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여성의 몸을 사고파는 성매매는 인간 존엄을 파괴하는 행위로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에 성매매피해자에 대한 성착취를 중단시키고 사람과 사람이 평등하게 관계 맺는 건강한 사회를 미래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성매매집결지 폐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파주시는 이번 국가인권위원회 진정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힙니다.

첫 번째 파주시는 성매매집결지 폐쇄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2023년 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1년 4개월 동안 13번에 걸쳐 면담을 가졌습니다. 13번의 면담 중에서 성매매피해자가 참석하지 않았던 적은 단 두 번에 불과합니다.

파주시가 성매매피해자와 협의 없이 성매매집결지 폐쇄 정책을 추진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면담에서 성매매 업주와 성매매피해자는 “성매매집결지 폐쇄를 3년간 유예해달라”는 주장만 반복해왔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으로서 불법을 묵인하고 성매매피해자를 방치해달라는 요구는 협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아울러 면담에 참여하지 못했던 성매매피해자가 더 많고 참여했다 하더라도 본인의 진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주시는 15명의 탈성매매 및 자활 지원 신청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매매집결지에서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성매매피해자가 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 파주시는 강제 철거로 성매매피해자의 주거권을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성매매집결지 내 주택을 불법으로 개축하거나 증축한 82개 건물에 대해 파주시는 2023년 2월부터 ▲위반건축물 시정명령 통보 ▲이행강제금 부과예고 통보 ▲이행강제금 부과 통보 ▲행정대집행 계고 통보 ▲이행강제금 체납 납부 독촉 및 압류예고 알림 ▲행정대집행 영장 발부 ▲행정대집행 대상 건축주와의 현장 설명 등을 통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불법건축물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추진해 왔습니다.

파주시는 건축주가 자진 철거한 40개 건물을 제외하고 2023년 11월부터 2025년 4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성 구매자를 호객하기 위해 여성들을 전시하는 유리방, 창고로 활용되고 있는 조립식 판넬, 비가림을 위한 경량 철골 등을 중심으로 행정대집행을 실시했습니다.

주거에 필수적인 방, 부엌, 욕실 등에 대한 철거는 단 한 곳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파주시가 2024년 3월부터 2025년 3월까지 매입한 건물에 대해 리모델링을 위한 철거를 진행하고 있으나 매입 당시부터 세입자는 없었습니다. 파주시가 성매매피해자의 주거권을 위협하며 강제 철거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파주시는 2023년 5월, ‘파주시 성매매피해자 등의 자활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시행함으로써 성매매피해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며 탈성매매와 자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자활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년간 생활비, 주거비, 직업훈련비와 탈성매매 후 2년이 경과된 시점에는 자립지원금도 지급됩니다.

성매매로 인한 피해를 치유하기 위해 법률 지원과 의료 지원도 병행됩니다. 파주시는 현재까지 15명을 자활을 돕고 있습니다. 성매매집결지를 폐쇄하기 위해 성매매피해자를 길거리로 내몰지도, 생존권을 위협하지도 않습니다.

성매매피해자가 원하는 지역에 집을 구해주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매달 생활비, 월세, 직업훈련비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1인 기준의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급여와 비교하더라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파주시가 인권 감수성 없이 성매매집결지를 강제 폐쇄하고 있어 성매매피해자의 생존권과 주거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착취를 묵인하고 방조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국제사회는 이미 2000년 팔레르모 협약을 통해, 한국사회는 2023년 ‘인신매매등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통해 성매매를 인신매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매매피해자에 대한 인신매매를 방지하는 것, 그것만이 파주시가 성매매집결지를 폐쇄하는 이유입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