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타현 1㎏ 단위 소포장 쌀 감탄
고시히카리, 한때 한국인에겐 최고
최근 日가격 급등 5㎏에 4만2000원
정부 비축미 방출에도 불안심리 계속
‘스와프 협정’ 수출땐 서로에게 이익

지난해 가을, 일본 니가타(新潟)현에 다녀왔다.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추수를 앞둔 들녘은 고즈넉하고 편안했다. 니가타는 일본 최대 쌀 생산지이자 최고급 쌀 고시히카리 재배지이다. 니가타 사케(酒)가 최고인 이유 역시 좋은 쌀 덕분이다. 소설 ‘설국’의 무대인 니가타 에치고 유자와(越後湯澤)역에서 만난 앙증맞은 소포장 쌀은 흥미로웠다. 1㎏ 단위로 포장했는데 축소지향 일본을 떠올리게 했다. 화려한 색종이와 색실로 포장한 쌀은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쌀 고장다운 기발한 발상이라는 감탄과 함께 우리도 도입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이젠 한국에도 소포장 쌀이 유통된다.
일본은 한국과 함께 세계 최대 찰진 쌀(자포니카 종) 재배국가다. 2021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34%가 쌀을 주식으로 삼는다. 또 유통되는 쌀 가운데 85~90%는 찰기 없는 안남미(安南米)다. 동남아시아 지역이 원산지로써 한국인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베트남이나 태국 식당에서 입으로 밥알을 불어가며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머지 10~15%가 한국과 일본에서 생산하는 찰진 쌀이다. 지구상에서 찰진 쌀을 먹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중국 북부지역 일부 뿐이다. 일본에서 고슬고슬한 쌀밥을 먹을 때마다 혀의 동질감을 느끼는 건 이 때문이다. 쌀이 좋으면 반찬도 필요 없는 한국인에게 고시히카리 쌀은 한때 최고였다.
최근 일본에서 쌀 부족 소동이 심상치 않다. 이런 현상이 2년째 계속되면서 14주 연속 쌀값은 오름세에 있다. 일본 언론은 ‘레이와(令和, 일본 연호) 쌀 소동’이라며 세 가지 이유로 분석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외국인 관광객들에 의한 쌀 소비량 급증, 난카이(南海) 대지진을 우려한 쌀 사재기, 그리고 이상기후와 고령화로 인한 쌀 생산량 감소다. 이 가운데 주목할 게 이상고온 때문에 급감한 생산량이다. 높은 온도에 취약하다보니 생산량 감소를 초래했다는 것인데 재앙이다.
당연히 일본 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최근 쌀값은 5㎏ 기준 4천214엔(4만2천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천68엔(2만원)에 비해 두 배 이상 올랐다. 최고급 품종 고시히카리는 1만8천850엔에서 4만9천250엔으로 같은 기간 무려 2.6배 뛰었다. 일본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두 차례 공공 비축미 21만t을 방출했지만 불안 심리를 잡는 데는 역부족이다. 이달 하순 10만t을 추가 방출한다지만 쌀 시장이 안정화될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일본과 비슷한 위도에 있기에 기후변화가 가져올 쌀 생산량 감소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라면 우리 또한 쌀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밥을 하늘로 삼는 우리 국민들이 쌀밥을 제때 먹지 못하는 상황은 믿기지 않는다. 만일 그런 날이 온다면 심리적 폭동마저 우려된다. 농경민족인 한민족 유전자에는 쌀이 각인돼 있다. “밥은 잘 먹고 다녀?”, “언제 밥 한 끼 하자”는 습관적인 인사말은 여기에 연유한다. 나 또한 아이를 키우면서 “밥 먹었냐”와 “끼니 거르지 말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 자라면서 부모님께 지겹게 들었던 이 말을 내가 아이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으니 쌀밥이 지닌 끈질긴 내력이다.
이 때문에 일본과 한국의 쌀값은 두 배 차이로 벌어졌다. 최근 한국 여행을 다녀가는 일본인 주부들 사이에 한국 쌀 구입이라는 새로운 여행 트렌드가 자리 잡았다. 일본 주부들이 무거운 쌀을 마다하지 않는 건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는 심산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엄마는 강하고 알뜰하다. 일본은 쌀이 부족하고 한국은 남아도는 상황에서 엉뚱한 ‘쌀 스와프 협정’을 떠올려본다. 한쪽이 쌀 부족에 처할 경우 비축미를 수출한다면 서로에게 이익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쌀 농가 소득 증대는 물론이고 정부 비축미 재고 해소에 도움이 된다. 물론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 지구적인 저탄소 노력에 달려 있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여러 대사 가운데 최고로 회자된다. 이 대사를 접한 많은 한국인들은 연민을 느꼈을 법하다. 인류가 온난화를 멈춰 세우지 못한다면 미래에는 “밥은 먹고 다니냐”는 안부마저 묻지 못할까 걱정이다.
/임병식 중국 탕산해운대학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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